2024-04-25 14:44 (목)
한 달의 삶이 주어지면
한 달의 삶이 주어지면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0.06.01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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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장

 What if you only had one month to live, what changes would you make in your life? (앞으로 딱 한 달 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이 땅에서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이 땅에서 무한정 쏟아나는 것처럼 산다. 만약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면 현재 하고 있는 많은 일들,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곧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가족과 여행,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 빌기, 맛있는 음식 먹기…. 모든 사람에게 종이를 주고 삶의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써보라면 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나에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별로 바뀔 것이 없을 거야”, “아이들을 더 꼭 안아 줘야지”…. 삶의 마감을 한 달 놔두고도 별로 마음 가운데 흔들림이 없는 것은 누구나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것에 초점을 맞춰 살아왔기 때문은 분명 아닐 것이다.

 삶에 대한 진지함이 없는 것은 삶 자체가 죽음이다. 매일 아침을 맞을 때 경외감이 없는 것은 오늘도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삶이 끝난다는 죽음의 공포보다도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매여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까지 지방선거 후보들이 하루하루를 롤러코스터의 스릴과 속도로 살았다. 공식 선거운동 13일간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서서히 정상에 오르다 한 순간 아래로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출발점에 들어오는 것 같았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온 후보들 앞에 잔인하게도 소수만을 위한 월계관이 놓여 있으니….

 매일 집 앞으로 폐지를 거두러 다니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봤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시면서 집 밖에 내놓은 신문지, 빈 종이박스 등을 애지중지 가지런히 하는 모습에서 삶의 보편성이 주는 기쁨을 보았다. 어느 문 앞에 소복이 쌓인 종이 더미에 함박웃음을 그리시는 할아버지를 보면, 시간을 아무렇게나 짓뭉개는 것이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선자들의 당선사례가 TV화면에 가득 넘칠 것이다. 당선자를 위해 조연을 섰던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지지만 초상집에 재를 뿌리면, 막상 한 달의 삶이 주어져도 별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잔칫집에는 이게 약이 될 것 같다.

 Teach us to number our days aright,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 (우리에게 남은 날을 계산하도록 가르쳐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성경 시편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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