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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가상 시나리오’
지방선거 ‘가상 시나리오’
  • 박유제
  • 승인 2010.04.27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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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유 제 편집부국장

 올초 언론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가상뉴스로 꾸며 본 2010 지방선거’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집권당 선거전략 책임자가 언론의 선거보도를 믿었다가 결국 패배하는 시나리오 형식으로 편집됐다.

 내용은 386운동권 출신으로 집권당 지방선거 전략을 총괄하는 실무책임자로 변신한 ‘변절남’이 여당에 지방선거 승전보를 올릴 수 있는 ‘맞춤형’ 전략을 짜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변씨는 필승전략의 핵심 포인트로 ‘언론’을 선택했다.

 대학 동문 가운데 언론계에 진출한 선후배들과의 친분을 강화하기 위해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고, 골프장 문턱이 닳도록 접대에 나섰다. 언론계 인사들의 가려운 곳과 약점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학생운동 브레인 출신인 변씨의 예리한 감각은 적중했다. 4대강 사업의 수질오염 우려 분위기에 언론이 물타기에 들어가면서 여론의 시선이 분산됐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50%를 훌쩍 뛰어넘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당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보도 형식으로 쏟아져 나오자, 변씨는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두고 대학 동창인 ○○일보 정치부 기자 ‘나곡필’과 술자리를 갖는다.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는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곡필은 이 자리에서 “요즘은 속칭 ‘빨아주는 기사’가 너무 많다”면서 “언론의 선거전망이나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곡필’을 자책하는 말투였지만, 변씨로서는 여당에 좋지 않은 얘기라는 점을 직감했고, 언론이 민심을 담기에는 너무 좁은 그릇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거일 하루 전인 6월 1일 밤. 인터넷 게시판 등에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쏟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분위기까지 그대로 전달됐다. 결국 변씨와 각 지역 선거정보요원들은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다.

 선거일인 2일 오후 6시. 당 지도부가 당사로 나와 당선자 이름이 적힌 상황판에 붙여 줄 꽃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시간,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러자 당 지도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났다. 변씨도 당사를 빠져나와 독한 위스키를 마신 뒤 곧 잠이 들었다.

 선거일 다음날인 3일 새벽 5시. 변씨는 아파트 현관 앞에 배달된 ○○일보 1면을 보고 쓴웃음을 던졌다. 탑 기사에 ‘집권여당 참패’라는 글귀가 또렷하게 눈에 박혔다.

 변씨가 내린 결론은 ‘언론의 찬가가 MB정부를 망치는 독이 됐어’였다. 언론의 선거전망과 여론조사 결과에 변씨나 당 지도부 모두의 긴장감이 풀어진 것이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상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이 났다.

 ‘미디어오늘’의 한 기자가 쓴 이 지방선거 가상 시나리오를 100일이 지나서야 다시 되새기는 이유는 경남지역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괴문서가 나돌고 무차별 폭로전도 불사한다. 심지어 ‘맞고소’와 ‘맞고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책은 실종되고 ‘네거티브’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그 뿐인가. 공천 결과에 불복한 예비후보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반면 야 3당은 전국 최초로 광역단체장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 일부 지역의 기초단체장 후보를 제외하고는 상당수 선거구에서 단일후보를 선정하고 선거연합이든 정책연합이든 야권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최근 경남도내 각 정당 공천심사위원회와 일부 선거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소개했던 지방선거 가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푸른색 점퍼만 입히면 당선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오만한 자신감, 정책은 뒷전인 채 뭉치고 보자는 식의 야 3당 선거연합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패착’일 수 있다.

 당 공심위나 단일후보 캠프 관계자 모두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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