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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한 ‘국민의 명령’
우리를 슬프게 한 ‘국민의 명령’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0.04.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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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령이다. 실종한 모든 수병은 귀환하라. 또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물 길속으로 뛰어든 고(故) 한주호 준위,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릴 것을 명령한다. 한 준위는 침몰한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자기 한 몸 던져 다시 세워낸 영웅이다. 온통 사고 원인이 뭐니 떠들고 있을 때 그는 말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 구조 및 수색작업의 중단을 요구했다. 뼈마디 마디가 부스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에도 실종자 수색으로 인한 추가희생을 우려, 또 다른 슬픔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명령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든다. 천안함 수병 모두는 곧 귀환하라, 천안함 실종자 46명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장문의 시(詩)가 해군 홈페이지에 올라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는 실종자들의 마지막 위치와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귀환이 대한민국의 명령”이라고 울부짖어 눈시울을 더욱 붉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해군 홈페이지에 ‘772함(천안함 번호) 수병은 귀환하라’는 제목으로 올린 한 네티즌의 시는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며 마치 상황실에서 통신을 하듯 시작하면서 생환을 기원했다. 장문의 시(詩) 이어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며 천안함내 위치별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대 임무가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귀대하라’고 외친다. 전함배치별 7명의 장병 이름을 부르고 ‘거친 물살 헤치고 바다 위로 부상하라’ ‘SSU 팀이 내려갈 때까지 버티고 견뎌라’고 울부짖은 뒤 나머지 39명의 이름과 계급을 일일이 적었다.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나머지 마지막 명령이다’는 그 절규에 소름이 느껴질 정도다.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생환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로 끝을 맺는다.

 네티즌들은 절절한 시구에 공감하며 한마음으로 생환을 기원했다. 이를 본 국민네티즌들은 귀환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시길 바란다. 국민 모두의 명령이자 염원으로 가족의 품에 꼭 안길 것을 호소했다. 귀환이 대한민국의 명령이란 네티즌 김덕규씨의 시(詩), 우리 모두에게 명령했다.

 고(故) 한주호 준위, 천안함 수병들의 참사 후 군, 정부 모두가 정신 못 차리고 갈피도 못 잡고 우왕좌왕할 때 한 준위는 격랑 속에서 비록 천안함 실종자들을 건져 올리진 못했지만 그 한 몸을 던져 심해 뻘속에 처박힌 대한민국의 체면과 위신, 그리고 존재 이유를 맨손으로 건져 올리고 산화했다. 그는 ‘순직’(殉職)한 게 아니다. 이게 ‘순국’(殉國)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라 전체가 혼돈 속에 휘청거리는 때, 한 준위의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죽음은 해저에 곤두박질 친 군의 위신을 세웠고, 대한민국이 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세상에 증명한 장본인이다.

 국민들은 정부도, 함장의 말도, 제대로 믿질 않았다. 모두가 의심의 눈길이었다. 화난 민심의 질타도 분노한 실종자 가족도 오직 한 분, 고(故) 한 준위의 영정 앞에서는 고개 숙였다. 한 준위의 거룩한 희생이 정부와 군의 모든 허물을 한 몸에 짊어지고 갔다.

 온통 사고 원인을 두고 난리 통일 때 그는 말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에 그는 스스로 주저함 없이 그 칠흑 같은 죽음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영웅이 갔다. 평생을 군에 복무하며 나라 위해 산 그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이 없다.

 그런 한 준위에게 퇴임하면 자동으로 받게 될 보국훈장 광복장을 주면서 생색내던 군과 정부가 한심하다. 더 한심한 것은 준위에서 일계급을 승진시켜 소위를 달아주겠다는 난센스다. 영결식장에서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지만 이에 앞서 그 알량했든 속 빈 강정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지옥에서도 살아오라고 가르친 대한민국 UDT의 살아있는 전설인 고(故) 한주호 준위, 고이 잠든 영웅이여 영원하리라.

 이번 초계함 사건으로 진짜 침몰한 것은 우리 군과 정부의 위기 대응 역량과 위기관리시스템이고 진짜 추락한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명령은 실종 수병과 어부는 무사 귀환을, 더 준엄한 명령은 군과 정부는 정말 제대로 하라는 것 일게다.

박재근 칼럼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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