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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야 했나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야 했나
  • 승인 2009.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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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
편집부장
 반민족 친일 행위자 명단이 추가 발표되면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YS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과거사 청산에 나선 이후 DJㆍ노무현 정권이 추진해 온 반민족 친일 행위자 색출, 공개 작업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온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구조적 모순이 지적될 때 마다 그 근간에 반민족 친일행위자를 처리하지 못한 역사인식부족과 역사적 숙제가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들어 친일청산이 급가속을 타면서 반발 내지 소극적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기득권층의 저항’이라는 일부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 친일범위, 방법론에 대한 이견 등이 광범위하게 제기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하고 있는 일은 애국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려내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놓치더라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질곡의 시대를 살았던 그 시대 사람들이 민족과 역사 앞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싶다. 지도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한때 미숙했던 약간의 행동이 자신의 전체 삶을 재단하게 된다면, 그래서 역사의 죄인이 된다면 우리는 자신있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위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규명위도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보면 규명위의 고민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데는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사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나 반대 증거자료 수집에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한 삶을 위해 적극적인 행위를 한 것과 일시적, 도저히 저항하기 어려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 행동과는 구별해야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행위보다는 그 과정, 배경에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삶 전체를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강압, 명의도용, 날조 등이 개입됐다면 말할 것도 없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을 그저 변명으로만 치부한다면 그 때 그들은 죽었어야 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과 등진 사람 빼고 친일 행위에서 자유로운 자 얼마나 있겠는가? 역사에는 최소한의 관용도 안되는 것인지 답답하다.

 규명위의 균형감각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좌익사회주의 계열 인물들이 친일 명단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 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몽양 여운형선생에 대해서는 ‘건국동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며 친일 행적과 관련된 글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적을 가지고 조사하지 않은 것’이라는 규명위의 해명은 궁색하다. 우익계열 친일 낙인찍기에 두 팔을 걷어부쳤다는 항간의 지적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니 규명위의 인적 구성이 도마에 오르는 게 아닌가 싶다. 긴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친일 진상 규명이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작전하듯이 이루어지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규명위 활동의 무게 중심이 단죄에 있어서는 안된다. 말 그대로 진상규명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친일 진상 규명이 더욱 가치를 발할 것이다. 옥석이 뒤섞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는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모처럼의 역사 바로 잡기가 혼란과 분열, 나아가 실소를 가져오게 한다면 아니함만 못하지 않겠는가.

오태영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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