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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가 공공의 적?
‘외국어고’가 공공의 적?
  • 승인 2009.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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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서울취재본부 부장
 한동안 잠잠하던 ‘외고 폐지론’이 또 다시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특목고를 활성화고로 전환하고 추첨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외고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면 모든 과목을 잘해야 외고에 입학할 수 있는 외고입시제도의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당사자인 외고 관계자들은 외고의 기능과 실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또 고교 평준화 체제 속에서 고교다양화와 수월성 교육을 보강하기 위해 탄생된 정책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학교의 본래취지가 독자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학생선발권을 활용, 성적우수자들만 확보해 영재양성 목적의 학교로 변화시킨 것에 대해 이 같은 강변으로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또한 어학 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 인재를 양성한다는 설립취지에도 벗어나 명문대 진학률만 높은 명문고로 변질돼 어문계열 진학률은 터무니 없이 낮은 30%에도 못 미쳐 폐지론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면도 있다.

 결국 입시 명문고와 명문대학 진학의 보증수표로 변질돼 과열경쟁과 사교육비 조장을 유발했다는 책임은 부인할 수 없게 돼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2009년도 서울ㆍ경기지역외고의 서울대, 연대, 고대의 진학률이 41.1%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수능시험 3개(언어ㆍ수리ㆍ외국어)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최상위권’ 수험생 배출 상위권학생은 수도권 외고들이 차지했다.

 사교육 및 사교육비에 있어서도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91.9%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월평균 71만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해 평균 사교육비인 53만 4000원 보다 32.9%가 더 많은 것으로 한 조사 자료에서 나타났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부터 특목고 전문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 등에서 외고 현안을 공론화 한 것은 필요하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외고를 없애겠다는 게 과연 능사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외고는 그 동안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월성 교육을 통해 평준화의 폐해인 학력저하를 막고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 온 게 사실이다.

 이러한 외고를 사교육비 유발 등의 이유로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워 문을 닫게 하는 건 국가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사교육비 문제는 부실한 공교육과 대학입시 등 교육 전반에 걸쳐 해법을 모색하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외고도 문제를 안고 있는 사교육유발과 편법운영 등의 잘못된 부분은 그것대로 풀어나가면서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이라는 기능을 유지 강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폐지론의 당사자인 정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 내용도 고등학교를 주된 교육목적에 따라 일반계고교, 전문계고교, 특성화고교 및 영재고교로 구분해 외고의 문제점을 해결 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인문사회 영재나 글로벌리더 양성 등 수월성 교육을 위한 학교 다양화를 외고문제 해법의 하나로 검토해 볼 만도 하지않을까.

 자칫 외고폐지가 사교육비 경감효과는 거두지 못하면서 수월성 교육만 망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지 않을지.

이용구 서울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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