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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한국 정치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한국 정치
  • 승인 2009.08.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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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폐렴 증상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지 37일 만이다.

 50여년의 정치역정을 국민 화합과 남북 화해를 위해 바쳐온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안타깝게 스러진 것이다.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이 시대의 위대한 스승’ ‘시대의 큰 별’의 서거에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국민으로서는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불과 3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애통한 일을 겪게 돼 더욱 슬프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에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담겨있다. 천신만고 끝에 당선된 국회의원직을 3일만에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로 잃고, 야당 정치인으로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숱하게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도쿄 피랍, 군사재판에 의한 사형선고 등 죽을 고비도 다섯 차례나 넘겼다.

 또 선거를 통한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극복, 햇볕정책, 남북 정상회담, 노벨 평화상 수상같이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반면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분당(分黨), 정계 은퇴와 복귀 등의 과정에서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야권을 분열시키고 정치발전을 가로 막았다는 비판도 받았고,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친인척 비리 연루사건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화 운동에 남긴 족적과 대통령으로서 통일정책의 기조를 바꿔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치적 리더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그의 정치 행태를 두고는 긍정적인 평가와 비난이 엇갈리지만 비판론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해 지지세력으로 만들고, 여야의 대치 상황에서 갖가지 투쟁방식을 동원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정치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그가 오히려 대통령에 당선된 뒤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같다고 말한다. 야당 지도자로서 거리투쟁과 단식농성 등을 통해 지방자치제 도입 등 정치적 승리를 거머쥐었던 돌파력과 ‘정치 9단’의 전략적 사고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특유의 신중함에 눌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집권 초기 소수 정권이라는 약점 때문에 각종 개혁을 소신대로 밀고 나가지 못했고, 그 뿐 아니라 측근들의 ‘공직 취임 자제’ 선언과 인물난으로 민의 수렴과 ‘소통’에 공백이 생기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역감정을 없애 국민 화합을 이루겠다는 필생의 꿈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그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는 지역주의가 더욱 심해져 영남 호남에 충청까지 갈라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야 했다.

 한동안 김대중이라는 거목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업적 가운데에도 21세기의 현실 정치에서는 형태를 바꿔야 할 대목이 분명히 있다.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국민들이 군사독재에 시달리며 민주화에 목이 말라있던 시절 몸을 던져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그 씨앗이 자라 민주화가 이뤄지고 그 세상에서 대통령을 맡아 그가 일궈낸 업적들은 역사가 한치도 가감 없이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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