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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論’
‘바보 노무현論’
  • 김동출 기자
  • 승인 2009.05.26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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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출
제2사회부장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바보’라고 칭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그가 살아왔던 삶이, 족적이 하필이면 똑똑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잘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걷는 길을 굳이 외면한 쪽이어서일까.

 대통령까지 지낸 그를 두고 사람들은 ‘생각해 보면 학벌과 돈과 출신지역과 혈연으로 결정되는 이 사회에서 아무 것도 없던’ 쪽으로 분류한다. 사람들은 그를 ‘상고 출신의 대통령으로, 감히 영호남의 화합을 위해 몸을 내던진 이상주의자’쯤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또 그를 ‘실패한 개혁론자, 말이 앞서는 지도자’로 칭한다. ‘섣부른 언론개혁론자’도 그를 수식하는 말 중 하나다.

 뿐만일까. 이름 석자만 내걸어도 세상 사람들이 다 알만한 유명 칼럼니스트는 그의 죽음을 두고 “노무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라고 평한다.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언론매체가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인가”고 질타한다.

 정말 왜 이리 야단들일까. 30℃를 넘나드는 때 이른 무더위 속에서도, 한낮 땡볕을 머리에 이고 그늘 하나 없는 2㎞ 길을 걸어 왜 사람들은 봉하마을로 ‘바보 노무현’을 만나러 가는 것일까.

 멀리는 강원도 철원에서, 전라도의 한 섬에서, 아이들 손에 손을 잡고 그의 빈소에 분향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미어지고 터질 것만 같아서 찾아왔다고 말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정말이지 그들은 모두 노사모일까.

 전국적으로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는 이들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일까.

 왜 그들은 그렇게 해서까지라도 ‘바보 노무현’을 만나야만 했던 것일까.

 전남 함평의 한 목사는 ‘바보 노무현’을 ‘당신은 우리에겐 너무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그는 ‘작은 땅에 살면서도 틈만 나면 영남 호남 편가르기에 열중하는 우리에겐 당신은 너무 큰 사람’이라고도 했다.

 ‘아파트 시세에 지지여부를 결정하는 우리네 천박함에 비해 당신은 너무 무거운 사람’이라고도 한 것은 단지 그의 ‘오버’일까.

 그의 서거 사흘째, 북한에서 2차 핵실험을 했다고 해도,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해도 왜 사람들은 ‘당장 내일 모레가 어찌될 지’ 걱정조차 않는 것일까. 그의 서거 앞에서 왜 그리도 의연해 하는 것일까.

 봉하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슬 퍼런 권력을 가진 일부 정치인들 앞에서 어찌 그리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쇼 하지 마세요. 오고 싶지 않으면서 왜 왔어요. 기자님들 카메라 찍지 마세요. 저들이 원하는 건 이런 모습 찍혀서 뉴스 타는 거잖아요?” 어찌 그리도 정확하게 세상을 읽는 것일까.

 이런 모든 물음에 ‘바보 노무현’을 오래 지켜봐 왔던 한 인사가 ‘바보 노무현’을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 밖에는 가진 것이 없이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라고 칭한 것은 지나친 찬사일까.

 경기도 수원시에서 차를 4시간 동안 몰아왔다는, 봉하마을에서 만난 한 시민은 ‘바보 노무현論’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보는 맞잖아요. 서울에서 출마했더라면 무조건 당선인데 당에서 시킨다고 뻔히 죽을 줄(낙선할 줄) 알면서 적진에 뛰어들고…. 영호남 화합, 그 우스운 거잖아요. 말로만 되나요? 그런 거 줄창 주장하다 깨지고…. 지역 균형, 그 좋은데요. 그러면 서울 경기 사람들 가만 있나? 사서 욕 먹을 짓만 골라 했잖아요. 또 그리 어렵게 대통령 돼서는 말 쉽게 해서 여론에 뭇매맞고, 검찰 권력 스스로 놓아줘 이 지경까지 되고…. 나? 노무현 안찍었어요. 근데 서거하고 나니까 새삼스레 그 분이 인간다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대통령 또 나올까요?”

 사람들은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로 불렸다고 기억한다.

 친근하고 소탈한, 탈권위를 앞세운 김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불과 3개월 여, 또 한 사람의 ‘바보’가 장미꽃 흐드러진 5월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김동출 기자>

김동출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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