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은 최근 말기 암환자가 연명치료의 중단을 원할 경우 법적 절차를 거쳐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존엄사 소송 상고심 판결을 목전에 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법률적 논의 진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씨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허용은 국내 대표적 종합의료기관이 구체 방안을 제시하며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이 병원의 의료윤리위원회는 ‘말기 암환자의 심폐 소생술 및 연명 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최근 공식 통과시켜 존엄사의 길을 텄다.
연명치료로써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또는 혈액투석 치료를 받을지 여부를 본인이 직접 결정하거나 대리인을 통해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설명처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법률적 또는 제도적 규정이 마련돼있지 않아 존엄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찬반 논란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법 따로, 현실 따로’의 관행이 암암리에 되풀이 해온 것이다.
이 병원의 경우 ‘2007년도에 말기 환자 85%의 연명치료를 가족의 뜻에 따라 중단했다’고 사실상 ‘불법’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서울대병원이 이럴진대 다른 의료기관의 실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사회에서 존엄사 논란이 수면 위에 떠오른 건 극히 최근이다.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한 이른바 ‘리스본 선언’이 1981년 당시 세계의사총회에서 채택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의 존엄사 논의가 얼마나 지지부진했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앞서 언급한 환자 김모씨가 지난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해 현재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존엄사 논란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또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바 있는 터에 서울대병원의 결정까지 나와 논쟁에 중대 변수가 되고 있다.
오는 21일의 대법원 선고에 대해 환자와 의료계는 물론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그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반대론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논쟁은 그동안 충분히 이뤄졌다고 본다. 이제는 소모적 논란단계에서 벗어나 한 발짝 진전시켜야 할 때다.
말기환자들이 독립된 생명체이자 인격체로 마지막 삶을 존엄하게 살고, 환자 가족들도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해야 한다.
생명존중이라는 기본취지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죽음의 주인이 환자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쪽으로 지혜를 발휘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