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9:31 (목)
악덕私債 이벤트 단속만 할 것인가
악덕私債 이벤트 단속만 할 것인가
  • 정종민 기자
  • 승인 2009.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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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
사회부장
 경기불황으로 서민들이 지갑이 바닥나자 이를 이용한 고리사채업자가 판을 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주변에 승용차를 주차해 두면 차량 유리문 사이에 돈을 빌려준다는 광고명함이 수북히 꽂혀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인터넷과 생활정보지 광고 등을 이용한 사채업도 활개를 치고 있다.

 경남경찰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사채와 불법대부. 유사수신 등 불법사금융행위로 입건된 건수는 259건으로 이 가운데 22명이 구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창경찰에 의해 구속된 무등록사채업자 최모씨의 경우 2006년부터 현재까지 서민 50여 명을 상대로 1억 5000만 원 상당을 빌려준 뒤 연리 230~436%까지 높은 이자를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최씨는 사채상환이 늦어지면 폭행하거나 승용차 및 가재도구 등을 빼앗는가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린다”는 협박 등을 일삼으며 불법 채권추심행위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휴대폰을 이용한 소액결제도 신종 대부업으로 등장했다.

 김해중부경찰에 적발된 김모씨의 경우 인터넷 및 생활정보지에 ‘휴대폰 소액결제’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전화를 한 사람에게 4만 8000원을 대출하는 등 모두 463명에게 3300여만 원을 대출해 이자로 514만여 원(월 이자율 18.4%)을 챙겼다.

 고리사채를 쓴 여대생을 강제로 유흥주점에서 일하게 해 아버지와 딸을 죽음으로 내몬 악덕 사채업자 일당도 쇠고랑을 찼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해 구속된 사채업자 백모(33)씨 등은 고객들에게 연 120~680%의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33억 원 상당의 이자를 챙겼다고 한다. 연체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대출계약을 연장하는 ‘꺾기’로 대출금을 눈덩이처럼 부풀린 뒤 채무자를 옥죄는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기가 찰 노릇이고 무엇보다 한 가정을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게 만들었다는데서 더욱 충격적이다.

 여대생 A씨(사망 당시 23세)는 2007년 3월 대부업체에서 300만원을 빌리면서 선이자 35 만원을 떼고 매일 4만원씩, 360만 원을 갚기로 했다. 그러나 꺾기 덫에 걸려 갚을 돈은 1년 만에 무려 1500만 원으로 불어났다. 협박에 못견딘 A씨가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접대부로 일했지만 ‘화대’ 등으로 번 돈 1800만 원을 빼앗기고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사채업자는 부모에게 우편물을 발송해 빚을 갚으라고 협박했다. 어렵게 대학에 보낸 딸이 사채의 함정에 빠져 술집 접대부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지난해 11월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평택의 한 저수지에서 목을 맸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의해 구속된 C씨는 빌려준 6800여만 원을 갚지 않는다며 주부 D씨를 협박해 인감도장을 받아낸 뒤 D씨 모친 소유의 빌라를 통째로 빼앗는가 하면, 주부 E씨에게 아파트 담보 대출을 알선하면서 1000만 원을 빌려준 뒤 “원금 상환이 늦다”며 2차례 모텔로 끌고가 성폭행하고 알몸 사진을 찍어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과 서민, 특히 저신용자들을 옥죄는 사채의 위험성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탤런트 안재환, 최진실씨의 잇단 자살과 안 씨 부인 정선희씨의 폭로를 계기로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이 한때 특별단속에 나섰지만 청부폭력까지 자행하는 불법 대부업체들의 과도한 이자 요구와 채권 추심의 극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저신용자도 지난 1월 말 현재 813만 8000명으로 1년 새 51만 명이 늘어났다. 제2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 전국 시ㆍ도에 2만여개로 추산되는 무등록 대부업체가 내미는 유혹에 빠질 개연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채에 손을 댄 서민들이 악덕업자들의 협박에 삶이 모조리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서민금융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찰도 이벤트성 단속에만 그칠 게 아니라 악덕 대부업체의 살인적인 이자나 채권추심과 같은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금융권도 저신용자를 위한 소액대출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는 이상 대출조건을 완화해 서민들이 사채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정종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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