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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몸으로… ‘리스트 공화국’
돈으로… 몸으로… ‘리스트 공화국’
  • 박유제 기자
  • 승인 2009.04.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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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제
정경부장
 절기상 ‘춘분’을 보름가량 지나 청명ㆍ한식이 다가왔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동토(凍土)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와 ‘장자연 리스트’로 불거진 정치적, 사회적 광풍(狂風)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쌍둥이 쓰나미’급 태풍의 위력을 갖고 있는 두 ‘리스트’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부정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나는 권력에 대한 뇌물리스트, 또 하나는 권력에 대한 성상납 리스트다. 둘 다 낯부끄러운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두 ‘리스트’는 가뜩이나 경제위기에 움츠려든 서민에게 끝도 없는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예전에도 ‘리스트’는 많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의 ‘리스트’는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된 피의자들의 로비활동과 관련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리스트’로 명명되기 시작한 권력형 비리 ‘이형자 리스트’를 비롯해, 수사기관에서 적발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김영은(고액과외사건으로 구속) 리스트’와 ‘원용수(병무비리로 구속) 리스트’, ‘정계개편과 관련된 한나라당 탈당 예상자 리스트’, ‘5공 신당창당 리스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 농협 회장의 ‘원철희 리스트’를 비롯해 ‘김상진 리스트’, ‘삼성 떡값 리스트’, ‘제이유 리스트’, ‘김우중 리스트’, ‘진승현 리스트’, ‘조동만 리스트’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지금까지 정치권과 재계, 연예계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리스트’는 출처와 유통처에서 변형한 아류와 변종까지 합치면 족히 100여 가지에 이른다. 우리나라를 ‘리스트 공화국’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사법처리로 이어진 ‘신성해운 리스트’처럼 사법당국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만큼 구체적이고 만족할 만한 수사 성과를 낸 리스트는 극히 드물다.

 4월에 접어들자 마자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연예계는 연예계대로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경남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인근 부산과 수도권까지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구속과 소환조사에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꼬리 자르기’식 수사 관행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인해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칼날이 참여정부 또는 ‘친박인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정치적 의혹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면이 없지않은 것같다.

 연예계의 ‘먹이사슬’이라는 구조적 병폐로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직접조사도 이미 시작됐다.

 리스트에 오른 ‘유명인사’가 누구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단이 공개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유명인사’가 반드시 연예계 유력인사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몇몇 방송 관계자나 연예기획사 관계자 몇몇을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리스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화를 소재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색다르다.

 쉰들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시류에 맞춰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 냉혹한 기회주의자였고, 폴란드 어느 마을에서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찌 당원이 되고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될 유태인의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해 1100명의 유태인을 구해낸다는 줄거리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돈과 명예를 위해 ‘돈과 몸으로’ 승부를 겨냥하는 비뚤어진 시대의 자화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박연차 리스트든, 장자연 리스트든 이번 만큼은 국민적 의혹을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

 더 이상 부적절한 ‘리스트’가 재생산되거나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정치적 편견이나 편향 없이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격한 사법처리가 필요한 이유다.

박유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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