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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향수 그리고 애향의 염원
[열린마당] 향수 그리고 애향의 염원
  • 승인 2009.03.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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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호
前 의령군민신문 회장
 사람들은 말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고, 50년이면 문화가, 100년이면 인골의 모양이 바뀐다고.

 세월이 얼마만큼이나 흘러 문화가 바뀔 때가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특별한 정(情)이 있었으니, 나이 60을 콧잔등에 걸고 ‘명퇴다’, ‘정년퇴임이다’하는 사유들로 생업현장에서 퇴장해야 할 기성세대의 공통된 정서, 바로 향수 일 것이다.

 겸허히 되돌아보면 우리들 삶의 무상함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어릴 적 연 날리던 친구며 호연지기를 키우던 그 산하와 사람들이 마냥 그리워지는 향수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를 반복해서 읊고 있는 정지용의 시구(詩句)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유의 감회이리라.

 해마다 내가 겪었던 보릿고개, 쑥과 칡뿌리와 개떡, 술지게미와 호박죽 등속이 연명 줄이 되었던 그 시절.
 우리세대의 옛날은 유난히 배고픔과 외로움을 먹고 성장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는 그래도 뚝배기에 한가득 소고기 국밥을 담아 주시던 저자거리 할머니의 온정도 있었고, 남의 고구마 밭을 뒤져 배고픔을 달래던 개구쟁이 서리꾼들을 혼뜨검 내시던 근엄한 어른과 무서운 선배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지만 내 편, 네 편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으며 날이 밝으면 그저 정겹고 따뜻한 우리세대 이웃사촌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잘난 지방자치제 선거가 있고부터 그런 아름다운 전래의 지역 정서가 망가져 가더니 급기야는 편 가르기에 짓눌려 자취마저 잃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랴.

 선거에 출마한 그들은 하나같이 애향(愛鄕)을 노래 불렀고 획기적인 발전과 인구증가를 외쳤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었고 소득 없는 시설물 만들기나 실속없는 이벤트성 행사로 치적을 눈속임 하면서 정녕 국세신장과는 먼 거리에 있었는데, 그들의 보무타려 한 업적이라면 내ㆍ외 군민을 내 편 네 편으로 줄 세워 이간질 하고 원칙과 능력이 무시된 엽관 인사로 훼손시킨 공직 질서이며, 그들의 편녕한 애향심에 속아 환호했던 주민들의 상실감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수많은 경기 종목의 선수들이 선전 할 때마다 국민이 하나 되는 동포애로 뭉쳐지듯 지방선거도 끝난 뒤에는 선정에 손뼉치고 그냥 국민의 본원인 애향심으로 하나 되면 좋을 텐데 선거 때 편 가른 후유증으로 뜻있는 많은 내ㆍ외 군민들이 망향(忘鄕)하는 대열에 동참하는 기찬 분위기로 치닫고 있으니 서글픈 현실이다.

 이제 지방자치제 선거의 가장 큰 폐해는 이웃사촌을 적군으로, 형제나 진배없는 선ㆍ후배와 죽마고우를 서로 반목하게 하여 골목마다 씻을 수 없는 상흔만 남긴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알았는데도 고향 사랑하고 지키는 일이 어찌 특정한 그들의 영예와 정년 연장의 망집(忘執)에 위장되어 방치되어도 좋을 가치라고 믿겠는가.

 어머니품속 같아서 어떤 지친 모습으로도 편히 안기고 싶은 한결같은 땅, 비단 옷을 입지 않고도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고향, ‘인정 많고 충의로운 고장’ 의 옛 정서를 되찾자는 염원이 간절한데 의령군정의 제일 목표는 바로 그것의 실현에 두었으면 한다.

 애향(愛鄕)은 어떤 개인적 명분이나 영예를 위한 구호로도 덧씌워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당위적 명제다.

박재호 前 의령군민신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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