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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기고]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 승인 2009.03.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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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환
거창문화원장
 얼마 전 집사람하고 거창문화센터에서 방영되는 ‘워낭소리’ 영화를 보러 갔었다.

 그전에 이명박 대통령 내외분도 관람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소 키우고’, ‘꼴 베고’, ‘쇠죽 끓이고’ 농사짓던 일과 ‘소’를 한 가족으로 여겼던 생각이 났다.

 암소를 길러 새끼를 낳으면 그 송아지를 시장에 팔거나 형편에 따라 큰 소를 팔고 송아지를 키워서 어른 소를 만들어 살림을 꾸려가던 ‘업’(집안의 살림이나 복을 보살피고 지켜준다는 동물 또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리의 소들이 떼를 지어 뒷산 큰 골, 작은 골 등을 번갈아 가며 소 먹이러 가서 꼴(마소에 먹이는 풀)을 베어 망태에 채우고, 해질 무렵 집으로 오기 위해 산에 오른 소를 찾을 때 우거진 숲속에 가려진 소의 워낭소리(거창지방에서는 ‘요롱소리’라고 함)를 귀 기울여 듣고 찾아내는 일들이 되살아났다.

 영화 속의 팔순 농부는 40살 소를 끌고 선조로 부터 물려받은 논, 밭을 생업의 터전으로 하여 숭고하리만큼 아름다운 농부의 마음과 함께 진저리나는 힘겨운 농사일을 철따라 이어가는 전원생활을 그대로 담아 우리에게 전했다.

 소는 깊은 병으로 사망선고를 받아 가슴을 저미게 하고, 늙은 농부 역시 살 날이 그리 많지 않은 형국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은 다 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에 대한 회한(悔恨)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또 다른 하루를 여느 때처럼 살아 낼 뿐이다.

 논ㆍ밭에서 터벅터벅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한골 한골 골을 치고, 또 지친 몸과 손으로 심어진 곡식을 한포기, 한 포기씩 매고(잡풀을 매다, 뽑다) 있는 할아버지의 느릿하고 고달픈 농사일을 숙명적인 것으로 나타내면서 가슴속에는 이미 결실의 풍요와 넉넉함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속도만을 추구해온 우리 생활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싶다. 많은 사람들이 ‘느린 것은 열등이다’, ‘빨리 빨리’로 곧잘 묘사되곤 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워낭소리’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속도 제일주의를 추구해온 우리 사회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양극화’, ‘환경파괴’, ‘가족와해’, ‘자살률 증가’ 같은 많은 부작용을 남겼다.

 이런 부작용을 치유하는데 소요되는 비용, 시간, 노력은 엄청난 국가적, 사회적, 부담으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겪으면서 잘 알고 있다.

 ‘워낭소리’는 아마 ‘느린 것이 더 효율적이다’, ‘바쁠수록 둘러가라’는 교훈을 던져준 의미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경쟁에서 앞서가는 것을 최상의 가치요, 미덕이라 생각하며 죽자 사자 앞으로만 가는 우리 가슴에 잠시나마 ‘느림의 효율성’, ‘느림의 가치성’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처럼 착하고 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지금 세상을 떠들 썩 하게하는 무서운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각자의 삶은 소(짐승)의 것도 사람의 것도 모두가 숭고한 것임을 알게 했다.

정주환 거창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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