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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워낭소리와 느림의 미학
[열린마당] 워낭소리와 느림의 미학
  • 승인 2009.03.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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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옥
하동읍 이호동세무회계사무소 사무장
 요즘 극장가와 문화계에는 작은 독립영화 하나가 대단한 화제를 낳고 있다.

 엊그제까지 관객 200만을 돌파했고 300만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이는 ‘워낭소리’이다.

 시골출신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워낭소리’의 친숙함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평소 ‘워낭소리’라기 보다는 ‘소방울 소리’라고 했었다.

 소 주인이 논밭에서 소몰이로 일을 할때는 ‘워~워’라는 단하나의 소리 강약만으로도 소에게 모든 대화가 가능하였고, 소방울에서 딸랑거리는 소리로 소 주인은 소의 감정을 읽었다.

 ‘워낭소리’는 우리의 농경문화에 지극히 평범하고도 자연스런 문화로 볼 수 있겠다.

 스위스 루체른으로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소방울을 스위스 명물로 만들어져 기념품점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들 사오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소방울은 그 울림이 청명하지만, 스위스의 소방울은 둔탁하게 울린다. 스위스는 소를 초원에 방목하면서 키우다 보니까 단지 소를 찾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위해 그렇게 단다고 했다.

 같은 소방울이라도 목적면에서 유럽의 단순히 찾기위한것 보다 우리나라 워낭은 소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훨씬 다양한 기능과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이 1960년경 우리나라를 방문해 지방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시골길에서 달구지를 묵묵히 끄는 소와 볏단을 지게에 가득 짊어진 늙은 농부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본 펄벅은 깜짝 놀랐다.

 “농부가 볏단을 지고 가다니! 미국 같으면 달구지에 지게와 볏단을 싣는 것은 물론 농부도 올라탔을거야!” 소의 짐을 덜어주려는 농부의 마음에 매료된 펄벅은 훗날 가장 한국적인 장면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렇듯 소를 살뜰하게 위한이가 어디 그 늙은 농부뿐이랴.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던 우리나라에서 소는 생구(生口)라하여 한 식구나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정월 첫 축일은 ‘소날’이라고 하여 소에게 일도 시키지 않고 그날 하루를 푹 쉬게 하면서 쇠죽에 콩을 잔뜩 넣어 먹였다.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만큼 소는 집안의 중요한 재산목록 1호였다. 농사를 짓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을 도맡아 했으며, 어려운 살림에 자녀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던 것도 소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소는 든든한 친구이기도 했으니 특별한 대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근대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중에 암울한 그늘에서 큰 힘이 되었던 것 중에는 수출공단의 여자기능공과 버스안내양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동생, 오빠들 뒷바라지로 학교를 보냈고, 가족을 먹여살렸다. 그런 뒷바라지로 공부한 형제들이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역군들이 되었음을 감히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근대사의 그늘에서 고생한 사람들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가 바로 ‘소’였다.

 꾀부릴줄 모르고 자기의 본분을 평생 삶으로 살아가는 소의 우직함을 요즘 같은 빠르기만을 강조하는 시대에 다시한번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다. 남명 조식 선생도 소를 통한 느림의 미학을 강조했다.

 말은 날래기는 하나 넘어지기 쉽고, 소는 느리기는 하나 힘과 안정감이 있고 성실하고 순하며 멀리갈 수 있다고 했다.

 급박한 세상에 소의 근성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선옥 하동읍 이호동세무회계사무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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