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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보도연맹’ 진실규명 … 그러나 우리는?
‘김해 보도연맹’ 진실규명 … 그러나 우리는?
  • 정종민 기자
  • 승인 2009.03.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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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
사회부장
 진실ㆍ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진실화해법 제2조 제1항 6호와 제22조 3항에 근거해 국민보도연맹사건, 전국 형무소 재소자희생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진실화해위의 잇따른 진실규명은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와 굴곡 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건과 왜곡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와 관련해 과거사를 바로 잡고 국가적인 화해를 이루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진실ㆍ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화해위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신청사건의 25%가 넘을 뿐만 아니라 전쟁 직후 전국에 걸쳐 국가공권력에 의해 조직적.체계적으로 민간인을 불법처형하고 대량학살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특히 지난 1월 5일 제90차 위원회에서 ‘김해 보도연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이 심의ㆍ의결 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해 보도연맹사건은 여타의 보도연맹사건 처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다가 문민정부 출범 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한 노력 덕분에 군과 경찰에 의해 이 사건이 저질러졌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진실화해위에서 내린 김해 보도연맹사건의 진상을 보면 한마디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해 보도연맹사건은 다른 보도연맹사건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다른 지역의 경우 북한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빨갱이 사상에 물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집단 학살한 경우가 많았지만, 김해지역은 북한군이 점령하지 않았던 최후의 후방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북한군이 점령했을 경우, 좌익화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보국 방첩대와 공군ㆍ해군 등 군 기관과 경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됐다는 점은 유가족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들고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결정 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의 반응이다.

 신문과 방송 등이 잇따라 보도를 했지만 한마디로 그저 무덤덤하다.

 무고한 양민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그것도 명단이 확인된 인원만 272명, 진실화해위의 추정인원이 1000명에 달하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비를 건립한다든지, 아니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아픈 희생을 방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부르짖는 행동 등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너무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갔고,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선 너무도 익숙해진 탓인가.

 얼마 전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30명 학살이 발생 5일 만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학살은 적국의 민간인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전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은 아군인 국군과 경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며, 그것도 60년 가까이 흐른 뒤에 진실이 가려진 것인데도 우리는 과거사란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과거사 관련 기구 통폐합과 인력ㆍ예산 감축 시도로 ‘뒤늦은 진상규명마저 중단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두고 한 언론은 “마치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산과 친일파 청산 무산 과정을 보는 듯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렇듯 정부의 입장이 애매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의 반응이 무딘 것도 탓할 것이 못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방자치단체도 정부의 눈치만 보지 말고 먼저 나서야 할 때다. 왜냐하면 희생자가 선대 주민이기 때문에 이웃의 아픔을 제일 먼저 공유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지만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것을 국민이 심판하고, 같이 반성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정종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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