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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도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천국에서도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박재근 기자
  • 승인 2009.02.2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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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창원취재본부장
 “나는 그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세요” 이 땅의 큰 별, 김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영원히 떠났다.

 “인간이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겠나, 내가 제일 바보 같을 수도 있다” 바보야란 자화상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다. 김 추기경의 웃음은 많은 사람에게 힘과 희망을 안겨준 활력소였다.

 김 추기경은 암흑의 세력엔 더없이 단호하고 꿋꿋했지만, 서민들에겐 웃음으로 대하는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종교계를 넘어 사회의 큰 어른이며 정신적 지도자로 힘든 삶과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온 자들을 돌보며 세상을 향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 실천자다.

 그 희망의 웃음과 단호함을 영영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더했기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향한 끝없는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또 옷깃을 여미는 영하의 추위에도 애도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은 것은 세상이 힘들수록 더욱 그리운 임을 보낸 마음일지다. 또 먼발치에서라도 우러러보며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든 이의 등불이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87년 생애 가운데, 1960~1970년대는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인권을 지키는데 앞섰고 군사 독재시절 그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의 불을 드높인 1970~1980년대, 격동의 시대에는 모든 국민의 위안과 희망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이 나라, 이 공동체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였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을 일깨워 주신 방향타며 사랑이란 고귀한 뜻을 남기신 분이다.

 불의에 짓밟히고서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었고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교회의 현실 참여를 제시한 64년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투철했던 김 추기경은 1970년대의 3선 개헌, 유신 헌법 제정을 비롯해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고비 고비마다 물꼬를 텃다.

 필자와 같이 겁이 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못난이들도 그 당시 오직 한분, 김 추기경의 시국선언에 목말라 했다.

 1971년 예수성탄대축일 자정미사에서 독재정권을 공개비판하고 7ㆍ4남북공동성명발표와 8ㆍ3긴급조치,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의 시국선언, 그 시국선언은 군사독재시절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더운 날을 잠재우는 소슬바람이요,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온풍 그 자체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 이정표였다.

 우리들의 삶을 지키고 버티어 준 희망이자 빛이었다.

 고뇌한 삶에도 너무 쉽게 다가온 일화는 우리 모두를 일깨운다. “삶이 뭔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2003년 11월 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최근에는 극명한 사회 양극화를 우려,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통합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한 김 추기경은 선종직전 미소와 함께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또 평소 밝힌 장기기증의사에 따라 선종직후 안구를 적출, 앞 못 보는 생명에게 빛을 주었다.

 복음을 실천하는 삶도 소탈했고, 종교와 이념의 벽도 허물었다. 계층도 무너뜨렸고, 가난한 자 병든 자 박해 받는 자들도 가슴에 품어 주었다.

 김 추기경은 종교인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해야 할 역할과 자세를 일생동안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었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어려움이 가득하다. 이 땅에 사랑과 평화, 화해 정의를 세우는 것은 남긴 고귀한 뜻을 간직한 우리들 몫이다. 모든 이들은 반목과 질시를 벗고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어 어려운 위기를 돌파하는데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

 김 추기경님, 천국에서도 명복을 누리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박재근 창원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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