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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휴브리스’
청와대의 ‘휴브리스’
  • 승인 2009.01.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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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쟁과 파행으로 얼룩진 임시국회가 8일 본회의를 끝으로 종료됐다. 국회는 9일부터 1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나머지 법안처리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달 12일부터 시작된 겨울 임시국회는 쟁점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의 극한 대치상황이 시작됐고, 급기야 국회 본회의장 점거농성과 강제해산 등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결국 임시회 종료 이틀을 앞두고서야 겨우 정상화된 국회는 ‘밀린 숙제’를 끝내겠다며 상임위와 법안소위 등을 잇따라 열고 법안처리에 들어갔다. 이틀만의 ‘벼락치기 숙제’로 끝나지 않은 법안은 2월 임시회에서 처리한다.

 일단 국회는 정상화됐다. 쟁점법안 처리여부를 둘러싸고 이견이 없지 않지만, 민생법안 처리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모양새다.

 10년 만에 집권한 한나라당은 이번 임시회를 앞두고 “힘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거치는 통과의례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냈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쟁점법안을 강행처리한다는 결의를 다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집권과 동시에 터진 촛불정국, 뒤이어 불거진 경제위기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절박함은 집권 2년차를 맞은 강력한 정책드라이브로 현 정국을 타개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였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국회가 속도전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여당 지도부를 압박한 발언은 그 정점에 서 있다.

 속도전에 대한 당정의 교감은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단독 상정으로 가시화됐다.

 뒤이어 홍준표 원내대표는 각 상임위원장과 간사에게 전 상임위 동시개최와 법안심의를 지시했다.

 야당의 물리적 저지로 법안심의 자체가 불가능할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법안 처리 계획도 세웠다.

 다수당인 여당의 강행처리를 막으려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장실은 물론 본회의장까지 점거하면서 ‘입법전쟁’이 본격화됐다. 물리적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야당의 승리로 끝났다. ‘입법전쟁’에서 패한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는 물론, 박희태 당 대표에까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여당의 ‘자중지란’은 좀 더 지켜볼 문제지만, 국회 정상화와 동시에 열린 상임위 회의에서 청와대의 ‘휴브리스’가 논란거리가 된 것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휴브리스(hubris)란 ‘신의 경지를 넘어선 오만’이란 뜻의 그리스어로,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가 성공에 취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과신하는 것을 경계하며 인용한 말이다.

 10년만에 집권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휴브리스’는 이번 임시국회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5월 교육방송(EBS)의 광우병관련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방송금지 압력설을 시작으로 KBS 사장 인사개입설은 지금도 논란거리다.

 최근에는 교과서 집필진의 내용수정에 대한 청와대 지시 논란과 함께, 한반도 대운하 사전작업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 강행추진 등은 대표적 ‘휴브리스’로 꼽힌다.

 현대건설 사장 재직시의 저돌적 추진력, 서울시장 재임시의 청계천 복원사업 등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신화가 청와대의 ‘휴브리스’를 출산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구조는 경제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교육, 환경, 복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청와대의 ‘휴브리스’가 작용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국민적 불행이다.

 토인비가 인용한 ‘휴브리스’라는 단어는 그리이스 ‘비극’에서 인용된 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유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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