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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의 허심이 빚는 광범위한 쓰임새
[기고] 대의 허심이 빚는 광범위한 쓰임새
  • 승인 2008.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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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산중의 혹독한 추위와 온 산야를 뒤덮는 하얀 눈….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바르고 곧은 자세와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가 더욱 돋보이는 계절이다.

 무자년의 일기가 막을 내리고 기축년의 일기가 시작되는 즈음에 푸른 대의 정신과 덕성, 그리고 ‘말 없음의 말’로 들려주는 무언의 법문에 귀기울여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대는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직으로 쪼개질지언정 결코 부러지거나 허리 굽히지 않는 ‘강직함’ 그 자체다.

 이같은 강직성을 필두로 한 대의 많은 덕성과 장점 때문에 예부터 시인 묵객들과 사상가들에 의해 군자로 불렸는지도 모르겠다.

 눈 속에, 찬바람 속에 화사한 마음을 보여 봄을 알리는 매화, 유연하면서도 고고한 기품을 일지 않으며 심원한 향내를 풍기는 난초, 무서리 내려 온갖 초목의 잎새와 꽃이 시들 무렵 오히려 짙은 향기와 고운 자태를 한껏 드러내는 국화와 함께 대는 오랜 세월 네 군자로 불리어 왔다.

 이들 사군자는 기품 있는 자태의 이면에 훌륭한 덕성 또한 겸비함으로써 실체적 존재보다 더 많은 그림과 글속의 존재로서 줄기찬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향기도, 덕성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군자는 ‘말 없음의 말’로써 좀 더 나은 삶의 도정을 펼쳐 보여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북풍한설의 혹독한 추위에 온 산하가 얼어붙는 요즘 같은 계절에는 늘 푸르름을 잃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일관하는 대의 기품과 덕성이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문으로 크게 이름을 드날린 백낙천의 양죽기는 대를 좋아하여 대가꾸기에 관심과 애정을 쏟았던 그의 마음이 엿보이는 명문이다.

 필자 역시 대를 무척이나 아끼고 위하는 편이어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맛과 멋에다가 생활에 유용한 대의 활인공덕을 추가시켜 대의 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친의 제조방법 창시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죽염 제법’에 따라 제조한 죽염은 국산 서해안 천일염의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병마 퇴치와 건강증진에 있어 더 없이 중요한 물질로 차츰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데 이것은 대의 활인공덕이 극대화된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속 빈 강정은 별 볼일 없는 것의 상징이지만, 속 빈 대나무는 얼마나 다양한 쓰임새를 빚어내고 있는가.

 대금ㆍ퉁소ㆍ단소의 오묘한 소리는 사람의 기와 조화를 이룬 결과로서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무심의 법문’이라 하겠다.

 재래식 똥통에 대를 박아 삼투압에 의해 대통 속에 고인 물은 예부터 어혈의 묘약으로 활용되었고, 대를 가열하여 똑똑 떨어지는 대 기름을 모아 중풍을 다스리는 약으로 써온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대통 속에 쌀을 넣고 밥을 지어 대통 밥이라 부르고 술 단지에 대를 넣어 그 속에 고인 술을 대통 술이라 하며 즐긴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담양의 대나무 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가 우리 생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쓰여 왔는지에 대해 잘 정리된 수 많은 유물과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속을 비우고 마음을 비운 허심의 대통 속에 천연소금을 채워 푸르름의 상징이요, 십장생의 하나인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펴 굽되 아홉 번을 반복하여 죽염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대와 소나무와 사람과 불과 바다가 어울어진 한 폭의 그림이라 하겠다.

 그 그림은 암, 난치병의 병고로 신음하는 수 많은 생령들에게 새 삶의 희망과 기쁨을 선사하려는 한 의자의 자비심과 지혜와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속빈 대나무가 뭇 생명의 원소이자 철학적 물질인 천일염을 받아들여 장생의 소나무 불에 의해 단련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새로운 물질로 다시 태어난 죽염은 그래서 철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인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김윤세 전주대학교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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