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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주성 달 밝은 밤에
[기고] 진주성 달 밝은 밤에
  • 승인 2008.12.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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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자년 2008년도 이제 보름을 남기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난황 속에서 경제는 물론 정치 · 외교 · 문화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지난 해 대선과 총선을 거쳐 새 정권이 들어섰고, 새해가 되자마자 숭례문 화재의 안타까움과, 광우병파동, 전국적인 촛불시위와 올림픽의 열풍을 비롯하여 이후로도 끊임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비 온 뒤에는 땅이 굳는다고 한다.

내년 한해는 대한민국호의 항해가 순조롭기를 기대해 본다.

 저녁 거리를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보니, 휘영청 둥근달이 떠 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는 이번 보름달이 지난 보름달에 비해 14% 더 커 보이고 30% 밝다고 했는데 이는 달의 궤도가 지구에 가장 근접한 탓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여느 보름달보다 훨씬 크고 푸근해 보인다. 한없이 바라보아도 달덩이 같은 어여쁜 딸내미 같아서 마음이 훈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빛을 안주삼아 오랜만에 벗들과 술 한 잔 기울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아진다.

 필자는 가끔 실비집을 찾는다. 안주가 푸짐하여 출출해진 배도 채울 수가 있고, 벗들과의 대화가 길어져도, 싫증이 나지 않는 넉넉하고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달 밝은 밤에는 모든 ‘시름’을 한 잔 술에 털어 낼 수가 있다.

‘시름’ 이야기가 나오니 이순신 장군이 생각난다. 입속에서 웅얼웅얼 장군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시조를 읊어 본다. 선조28년(1595년) 임란(壬亂)으로 온 나라가 혼란하던 시절 진중에서 읊은 시조로, 나라에 대한 걱정스런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장군에게 양해를 구한 뒤, 감히 그 시조를 실비집 분위기에 맞게 패러디해 본다.

 진주성 달 밝은 밤에 실비집에 여럿 앉아 술잔 돌려 가며 설왕설래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 호루라기(?) 남의 애를 끓나니 술은 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뛰어난 힘을 지녔는가 하면, 술 취한 사람 사촌 집 사 준다는 속담처럼, 뒷감당도 못할 호언장담을 하게 되기도 하는 마술의 힘(폐해)을 지니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비한 위력을 지닌 술은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술에 의해서 뜻하지 않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연말연시에는 음주단속이 강화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올해에도 경찰청은 12월 1일부터 다음해 1월 31일까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주단속을 한다고 하였다. 단속이 강화된다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술자리가 잦은 연말연시이니만큼 각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음주운전자가 적발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의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잘라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음주문화가 많이 달라져야 한다. 2차, 3차로 연결되는 음주문화가 낳는 폐해는 생각보다 크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송년모임을 다양한 형태로 치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임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일반적으로 유흥의 성격을 띠었던 모임을 각종 봉사활동으로 대체한다거나, 가족끼리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좋은 방향으로 동참한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좋은 문화를 후세들에게 많이 물려주는 것만큼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따라 끊임없이 나라를 걱정했던 이순신장군의 고결한 정신이 보름달에 환하게 비친다.

공영윤 경남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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