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0:01 (화)
100년 전통 실크 명성 되찾는다
100년 전통 실크 명성 되찾는다
  • 이대근 기자
  • 승인 2008.12.11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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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뉴똥’ 아십니까
진주시, 실크전문단지 기공 등 집적ㆍ전문화 본격화
서울서 전문매장 개장, 국회서 전시ㆍ심포지엄 개최
 진주실크전문단지 기공식이 지난 2일 문삼읍 현지에서 열린 가운데 관계자들이 발파 버턴을 누르고 있다.
 70~80년대 우리나라 멋쟁이들의 필수품이자 애용품으로 전국을 주럼잡던 진주비단 대표 직물인 ‘진주 뉴똥’이 부활할 수 있을까.

 세계 5대 실크 명산지로서 100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진주실크가 옛 명성 되찾기에 발벗고 나섰다.

 전국 실크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70%인 103개 실크업체가 있는 진주시가 60~80년대의 호황기를 되찾기 위해 실크전문단지 조성에 들어가는 등 사활건 복귀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진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역 특화산업인 실크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기반을 조성하고 실크산업의 집적화, 고도화로 세계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시는 또 다양한 완제품 생산과 진주실크 명품화 전략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고 상설 패션쇼장이 들어설 실크전문단지 기공식을 갖는 등 진주실크 살리기 행보를 본격화 하고 있다.

 특히 민선 3기 정영석 시장 취임이후 지역혁신 특성화 시범사업으로 실크전문단지 조성을 신청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진주실크 박람회 및 실크디자인전, 대한민국의 최중심지 서울에 실크전문판매장 개장, 국회의원회관 전시와 실크산업 발전토론회 등을 잇따라 열리면서 실크산업 육성이 구체화 되고 있다.

 지난 2일 진주시가 문산읍 삼곡리일대 13만 3000㎡의 부지에 국ㆍ도ㆍ시비 등 총 220억 원을 투입해 2009년 준공을 목표로 기공식을 가진 실크전문단지는 진주실크산업 활성화를 구체화 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타당성 및 기본계획을 수립해 이를 실천에 옮긴 것.

 더욱이 이번에 기공식을 가진 진주실크전문단지는 진주시가 지역경제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고자 추진한 사봉과 정촌산업단지, 바이오와 실크전문단지를 잇는 4각 산업벨트사업중 하나로 21세기 진주의 경제중심축 하나를 책임지게 된다.

 앞으로 진주실크전문단지가 조성되면 단지내 공장부지 20필지에 우수한 실크업체를 이전하고 실크혁신센터를 건립해 한국실크연구원이 이전함과 동시에 단지내에서 새로운 고급 디자인의 연구ㆍ개발이 이뤄지게 된다.

 또한 실크혁신센터내에 실크박물관, 전시홍보관, 패션쇼장, 신소재 개발센터, 봉제기술센터 등을 갖추고 명품 진주실크의 브랜드를 개발하게 되며 이를 홍보하고 마케팅해 명실공히 진주실크의 세계화를 꾀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이와함께 집적화와 전문화된 상품생산과 유통구조 개선으로 해외 바이어의 방문 등이 원활해져 세계시장 진출이 보다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원 스톱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에따라 진주실크전문단지가 조성돼 기업의 입주가 완료되고 진주시가 지자체 최초로 200억 원을 투입, 조성 완료한 15만여㎡ 규모의 생물산업전문단지에 진주환경독성 연구소가 입주한다.

 두곳의 산업단지에서 본격적인 생산활동이 시작되면 최첨단산업인 바이오 업체와 지역특화산업인 실크업체 등 80여 개(총 사업비 875억 원/조성면적 37만㎡)의 기업에서 연 2000여 명의 고용창출과 4000억 원의 매출이 예상되고 있다.

 시는 이와함께 인근의 바이오산업은 물론 2012년까지 건설될 혁신도시와 인근의 사봉과 정촌산업단지 등과 연계해 동반성장을 이뤄 나간다면 진주미래 100년 발전의 토대가 이뤄지고 진주지역 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시는 지난 11월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진 실크산업육성 및 발전토론회와 전시회에서 국회와 정부, 학계 및 연구기관에 진주실크산업의 전망과 육성 당위성을 전달함으로서 앞으로 진주실크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협조를 확고히 끌어 내 진주실크의 전망을 더욱 밝게했다.

 시는 그동안 진주실크의 핵심기술 및 전문적 지식기반 향상을 위해 한국실크연구원내에 견직물 시제품 개발 지원센터를 설립, 최첨단장비로 실크시제품을 개발해 업체에 기술지원을 하고 있으며 올해 1억 6000만 원어치의 제품을 판매했다. <이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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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진주 뉴똥’ 전국 확산 전성기

90년대 위축 2000년 이후 침체기 맞아

 진주실크는 지리산으로부터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과 온화한 기후, 양질의 토질을 강점으로 일찍부터 이탈리아 꼬모, 프랑스 리옹, 중국의 소주, 일본의 경도와 더불어 세계 5대 명산지로 발달해 왔다.

 진주실크가 지역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1910년께로 인근의 산청, 함양, 사천, 하동지역의 양잠생산과 남강의 맑은 물을 이용한 염색중심의 비단을 생산해 오다가 진주지역 직물 공장의 근대화로 진주에 실크공장이 설립되면서 부터다.

 1920년대에는 현 대안동 우리은행 자리에 동양염직소가 설립되는 등 다수의 견직공장이 설립됐고 30년대에는 비단과 인견을 생산, 진주비단의 대중화와 역직기 도입으로 현대식 공장이 설립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40년대에는 진주 중심의 견직공장 설립이 확대됐으며 동양염직 현대화 및 조일견직 설립이 진주실크 성장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등 60~80년대 최대의 호황기를 맞이하는 성장기반을 조성하게 된다.

 이같은 지역 여건의 변화에 따라 60년대 이전의 누에고치 생산확대와 제사공장 설립 확대로 산업비중 30%, 수출 131만 1000달러로 진주의 기간 산업으로 성장했다.

 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계획에 의한 1차산업 활성화로 실크생산 수출에 힘입어 65년 99개 업체에서 70년 149개 업체로 업체가 증가하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70년대 들어서는 진주비단 대표 직물인 ‘진주 뉴똥’이라는 고유상품을 개발해 진주뉴똥 제품을 전국에 확산시켰으며 80년대 호황기를 맞이해서는 지역 제조업체 500여 개중 실크제조업체가 130여 개로 지역 총 생산의 20%, 지역제조업의 33%, 지역 수출의 39%를 차지하는 등 담당 지역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90년대 시장 개방으로 인한 경쟁시대 돌입과 경기침체, 국가경쟁력 약화,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돼 실크업체의 창업과 폐업이 빈번하는 등 정체기에 들어 갔다.

 2000년부터는 가내공업 수준화, 주문자 생산 미탈피, 중국과 인도 등 신흥공업국의 급성장 및 저가물량 공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선진국의 고급 브랜드 점유 증가 등으로 실크산업의 침체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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