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봄에서 여름에 걸쳐 국정을 거의 마비시키는 전대미문의 홍역 끝에 이 땅에 재상륙한 미국산 쇠고기가 속속 한우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 부천시의 한 정육점은 kg당 8400원짜리 미국산 쇠고기 목심을 국산으로 위장해 3만 6700원에 팔다 들통났다. 광주광역시 북구의 음식점은 미국산 및 호주산 쇠고기를 kg당 2만 8000~2만 9000 원에 구입한 뒤 한우와 섞어 1인분(150g)에 2만 3000원씩 받는 폭리를 취했고 대전시 대덕구의 갈빗집은 kg당 6500원도 안 되는 미국산과 호주산 소갈비로 만든 갈비탕을 한우라고 속여 한 그릇(약 170g)에 6000원 씩에 팔다 형사 입건됐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한 지난 7월 8일부터 10월27일까지 음식점 7만 3132곳과 정육점ㆍ마트ㆍ수입상사 등 유통ㆍ판매업소 1만 7024개곳을 단속해 488곳을 적발했다.
이 중 미국산이 국산이나 호주산 등으로 둔갑한 경우가 35건이다.
전체 조사대상의 0.04%도 안 되니 원산지 허위 표시가 그리 흔한 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단속의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미쳤는가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가 많다. 전담 단속요원이래야 100명을 겨우 넘고 명예감시원 500명과 한우협회감시단 30명 등을 합해도 식당과 급식소 64만 곳과 유통ㆍ판매업체 44만곳 등 108만 곳에 이르는 단속대상 업소를 모두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규모가 크게 늘고 대형 마트 진열대에도 오르면서 위반 행위가 급증하고 있어 걱정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서 팔리기 시작한 미국산 쇠고기는 값도 싸고 맛도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를 압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불황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호주머니가 부쩍 얄팍해진 서민들은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값밖에 안 되는 미국산 쇠고기 쪽으로 손이 자연스레 가기 마련이다. 그 바람에 한우는 물론이고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쇠고기값이 떨어지고 그 영향이 돼지고기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로선 경쟁이 붙어 값이 떨어지는 건 좋지만 그와 더불어 가짜 한우나 가짜 호주산 쇠고기가 판치는 것까지 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는 국민이 여전히 상당수에 이르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광우병 괴담’이 초미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한우로 둔갑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했다.
국민에게 먹을거리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찜찜한’ 미국산 쇠고기를 속아서 먹는 일을 막는 것도 정부의 할 일이다. 미국산보다 더 많다는 호주산과 뉴질랜드산의 국산 둔갑 역시 근절돼야 한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은 수입산은 물론이고 한우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가중시킬 소지가 크다.
정부는 원산지 단속을 강화하고 위반자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 원산지를 속이면 음식점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유통ㆍ판매업소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의 중형으로 다스리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는 데에는 단속도 허술하지만 설령 걸린다 해도 벌금 몇 푼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 하고 있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산지 표시 위반 행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근절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