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에 대해서는 헌법에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해야 한다`고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정기국회 폐회뒤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는 `위헌`사태가 되풀이돼 왔지만 국회가 이 때문에 국민에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기미를 보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여야는 법정 시한을 넘겨 정기국회 폐회일인 12월 9일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일정표를 마련해놓기는 했으나 양쪽 모두 정기국회 회기내에 처리하겠다는 의지는 사실 없는 상태이며, 예결특위 부별심사, 계수조정 등 남은 일정을 감안할 때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새해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산안에는 예산집행과 관련해 민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십개의 부수법안이 연계돼 있어 함께 처리돼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이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이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이 없다. 남들은 행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정치인과 기업인이 재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우리 국회는 쌀직불금, 수도권 규제완화, 종합부동산세 같은 쟁점을 정치적인 공방의 소재로 삼아 소모전을 하고 있다. 또 여당인 한나라당은 주요 현안에 대한 내부 의견조율도 제대로 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은 언제나 현안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왜 누가 들어도 수긍할만한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지 답답할 뿐이다. 독자적으로 여당의 경험을 살려 전문가들과 정책방향을 논의하고, 공개 토론회도 열고,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에 대해 잘못된 점, 보완할 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여론을 주도하면 지지율이 왜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모든 현안을 정치적인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지금은 어쨌든 `여야가 싸움만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할 때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비밀리에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해보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외국 언론이 한국의 경제난에 대해 편파적으로 과장보도하고, 일본이 한국을 노리고 IMF(국제통화기금)에 기금출연을 제의했다는 지금의 상황에 정치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자중지란에 휩싸여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정치권을 밖에서 보면 어찌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이 초당적, 초계파적으로 협력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현안을 정치 이슈화해 매달리다 보면 시급하고 근본적인 금융위기 타개책을 논의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결국 국내외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 불필요한 정치공방을 자제하고 진정한 국정의 동반자로서 국가를 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