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혼란을 키울 뿐더러 부동산시장 불안을 증폭시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당리당략에 함몰된 정치권의 끝없는 정쟁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갈팡질팡하며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만 되풀이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반대만 외치고 있으니 일이 풀리기를 기대하는 게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은 핵심 조항인 세대별 합산 과세와 1주택 장기 보유자 과세가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만큼 대폭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나 헌재의 결정이 열흘이나 지나도록 해 놓은 것이라곤 과세기준의 현행 6억 원 유지가 전부다.
기준을 9억 원으로 올리고 세율을 현행 1∼3%에서 0.5∼1%로 내리기로 한 지난 9월22일 당정협의의 결정은 슬그머니 사문화됐다. 세율이나 1주택 장기 보유 기준 등을 당 지도부에 일임했다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국민 편가르기의 상징인 종부세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저마다 의견이 달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번에 종부세 자체는 합헌임이 확인됐다며 세대별 합산과 1주택 장기 보유만 손대는 소폭 개정을 주장한다.
특히 종부세 개편을 새해 예산안과 연계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치고 있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정치권에서 내놓는 개편안은 백가쟁명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하나 하나같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우선 1주택 장기 보유를 몇 년으로 삼을까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5년이든, 8년이든, 10년이든, 주택의 유동성을 제약하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속박하는 규정의 신설은 재고해 봐야 한다. 장기 보유에 해당되는 집을 팔고 새 집으로 옮기면 종부세를 내야 한다면 이사 가기가 망설여질 게 뻔하다.
종부세를 일단 내고 장기 보유 기준을 충족하면 되돌려주는 방안도 곤란하다. 한두 푼도 아닌데 몇 년씩이나 낸 뒤에 돌려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부세 등의 부동산 관련 세금을 완화하자는 주장에는 부당한 세제 개선과 함께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려는 뜻도 담겨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 위기에서 비롯된 실물경제 침체로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세계를 뒤덮고 있는 마당에 주택의 유동성을 일부러 떨어뜨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특히 우리 국민은 재산의 80% 이상을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결코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
세대별 합산을 허용해도 문제는 남는다. 종부세 과세대상 주택은 남편이나 아내 한 사람의 명의로 등기돼 있는 게 대부분이다. 세대별 합산 혜택을 받으려면 부부 공동 명의로 바꿔야 하나 여기에는 만만치 않은 등기비용이 뒤따른다.
한나라당이 부부 동거 1주택자에 대해 3억 원의 기초공제를 적용해 사실상 9억 원의 과세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지만 너무 작위적이라는 냄새를 지우기 어렵다.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 그나마도 실현될지 의문이다. 최저와 최고가 무려 20배나 차이나는 세율도 대폭 완화를 주장하는 한나라당과 현행 유지를 고집하는 민주당이 강력히 대치하고 있는 부분이다.
종부세법은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편가르기의 대못질’로 재산세에 흡수시키는 게 옳다.
당장 폐지가 힘들다면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는 개편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경제 상황이 IMF 때보다도 더 위급하다는 지금은 편가르기가 아니라 화합에 힘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