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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화와 실화
[기고] 방화와 실화
  • 승인 2008.11.0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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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00동 00번지인데요 우리집에 지금 불이 났어요! 소방차 1대만 보내주세요”

119상황실에 화재신고를 하는 사람 중에 가끔씩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 화재가 나서 소방대가 출동할 때마다 소방차 1대에 얼마씩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잘못알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주민이 밭 주변의 관목들을 정리하고 쓰레기와 함께 태우다가 산으로 불씨가 번져 10㏊에 이르는 산림을 태운 일이 있었다.

소방헬기, 산림청 헬기 2대와 20여대의 소방차, 소방공무원과 시청공무원, 군인들까지 동원되어 화재를 진압하고 나서 산불을 낸 사람에게 왜 빨리 신고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소방차가 출동하면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서워 자기가 혼자서 불을 끄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차가 출동하면 벌금을 낸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내용이다. 물론 화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화재를 낸 사람은 형사상 ·민사상의 책임을 묻게 된다. 형법에서 방화한 사람은 방화죄로, 실수로 화재를 낸 사람은 실화죄로 각각 처벌된다.

방화에 관해서는 그 처벌이 엄격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였을 경우에는 법정 최고형까지 구형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민사상으로는 ‘실화의 책임에 관한 법률’로 실화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을 때에 한해서 실화자는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고, 경과실(輕過失)인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보통의 불법행위와는 달리 경과실인 경우에 면책되도록 한 것은 화재에 의한 손해는 상황에 따라서는 극히 클 수 있고 실화자 자신도 손해를 입을 때가 많다고 하는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중과실이란 매우 주의가 결여된 경우인데, 경과실과는 양적인 차가 있을 뿐으로서, 중과실이 있었던가의 여부는 그때마다 구체적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다.

‘실화의 책임에 관한 법률’은 불법행위의 책임에 관해서 적용이 있을 뿐이며, 채무불이행(債務不履行)의 책임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셋집에 사는 사람이 셋집을 태웠을 경우에는 임대차계약상의 의무불이행이 되므로 경과실이라도 집주인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 화재로 옆집이 연소했다면 옆집에 대해서는 중과실이 아닌 한 손해배상의 책임은 없는 것이 된다. 또 화약 등의 폭발에 의한 화재인 경우에는 이 법률은 적용되지 않고, 경과실에 의할 때라도 배상의무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방화에 관한 처벌이 있었다. 궁궐에 화재가 나면 큰 종을 쳐서 알렸고, 민가에 화재가 나서 기와집 3칸 이상, 초가 5칸 이상이 타면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방화에 관한 규정이 엄격하여 자기집을 불태운 자는 곤장 100대, 방화로 자기집과 이웃집 또는 관아를 불태운 자는 곤장 100대와 3년 유형(流刑)에 처하였다. 고의로 관아나 민가의 창고를 불태운 자는 참형(斬刑), 왕릉에 방화한 자는 국경 변방에 유배되었고 주인집에 방화한 자는 교살형(絞殺刑)에 처하였다.

화재는 성상에 따라 크게 초기, 중기, 최성기, 감퇴기 4단계로 구분된다.

화재 초기에는 소화기 한대로도 충분히 화재를 진압할 수 있지만 그 단계를 벗어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실제 화재현장에서는 소방차 열대도 모자랄 경우가 허다하다.

화재 초기단계에서 진압하는 것과 최성기 상태의 화재를 진압하는 것은 인력이나 장비 및 시간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리고 화재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피해도 그 차이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불순한 목적을 가진 방화에 의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화재신고를 지연하거나 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초기 소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소방차의 출동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겠지만 벌금이 두려워 신고를 늦게 해서 더 큰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겠다.

전수진 경남도소방본부 지방소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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