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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자의 ‘무용지용’과 ‘유용지용’
[기고] 장자의 ‘무용지용’과 ‘유용지용’
  • 승인 2008.10.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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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용’은 원래 쓸모없는 일이 사실상 어떤 방면에서는 쓸모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눈앞의 쓸모 있는 물건에만 주의를 하고 쓸모없는 물건은 소홀히 하는데 이러한 편향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자의 학설에 따른다면, 세상 만물은 도의 지배를 받는다. 도의 입장으로 만물의 가치를 본다면 어떠한 차이도 없으며 유용하다거나 무용하다는 이러한 판단은 단지 인간의 터무니없는 판단일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룩된 기계문명과 모든 가치가 ‘돈’으로 계산되는 자본주의가 결합된 것이 현대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모든 시간을 효율성과 합리성의 이름 아래 쪼개어 그 쓰임을 조금도 헛되게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헛된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갈수록 더욱 시간에 좇기며, 온갖 스트레스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돈과 재화를 얻게 되는 것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일은 어느 샌가 쓸데없는 일들이 되었으며 현대인들은 더 이상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더 많은 재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교양까지도 산다.

온갖 문화센터를 통해 팔리는 교양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일하고 벌 것을 강요한다.

인간에게는 여러 측면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 어느 한 측면만 충족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태어났으며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그 관계들 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자연과의 교감, 사람사이의 유대감, 사물과의 교감을 형성하는 데는 지속적이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가을날의 저녁노을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느껴질 수 없으며, 그 노을을 바라보면서 번져오는 가슴 벅참을 목적지에 서둘러 도착하고자 하는 이는 결코 느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난 삶이 행복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 물질적 면과 정신적 면 어느 한 쪽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인간은 행복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한 기쁨 또한 일시적이나, 우리의 정신이 느끼는 기쁨은 무한하며 지속적이다.

충족되지 않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에 매달려 정신적 측면을 황폐화시킨다면 이는 불행을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어느 때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무용지물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상당한 가치를 찾을 수도 있다.

장자는 사물의 가치를 발견하려면, 한쪽으로의 가치관을 버려야만 한다고 여겼다.

만약 각도를 바꾸어 주위의 사물을 조금만 주의해 살펴본다면 수많은 행동이나 사물들 속에서 무용의 유용함에 해당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날씨에 관한 인사를 예로 들어보자. 날씨에 관한 인사는 어떤 사람의 눈에는 전혀 필요 없는 것으로서 단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일 뿐 그러한 인사를 하지 않아도 세상은 여전히 어제와 다름없고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하는 한 마디의 날씨 인사는 사람과의 유대감에 있어서 암묵적 관심사이며 친근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무용은 마음을 비우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일컫어진다.

경박하지 말라. 멀리 보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정철규 진주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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