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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돈이 어디 쌀 직불금뿐이랴
눈먼 돈이 어디 쌀 직불금뿐이랴
  • 승인 2008.10.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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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득보전 직불금 비리는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뒷맛이 영 씁쓰레하다.

더욱이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도 불법 수령 의혹을 받고 있다니 기가 찰 따름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선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비록 이 차관의 경우가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유사 사례가 연간 수 십만 건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쩌다 터진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비리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추곡수매제 폐지와 함께 2005년 도입된 직불제는 산지 쌀값과 목표가격 차액의 85%를 정부가 직접 메워 주는 제도다.

시장 개방에 따른 쌀 농가의 피해를 일부 보상한다는 취지이나 비경작자도 해당되고 지원이 대규모 농가에 집중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원은 2006년 직불금 수령자 99만8,000명 중 28만 명을 비경작자로 의심했다. 비료 구매나 농협 수매 참여 사실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 이 추정이 맞다면 2006년의 직불금 1조1,000여억원 가운데 1,680억원은 무자격자가 불법 수령했다는 얘기다.

열 명 중 세 명꼴이 무자격자로 의심된다면 쌀 직불금은 그야말로 ‘눈먼 돈’에 다름 아니다.

농사와 다른 직업을 병행할 수도 있고 직접 비료를 사거나 농협에 쌀을 팔지 않고도 농사가 가능하므로 무조건 비경작자로 단정할 수 없다는 농림수산식품부 주장에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다.

특히 여기에 연루된 공무원과 가족이 4만 명이라면 ‘제2·3의 이봉화’가 얼마든지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옥석을 가려내 형사처벌이나 인사상 불이익 등 응분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고위 공직자가 연루됐다면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이밖에도 회사원 10만명과 금융계 8,000여명, 공기업 임직원 6,000여명, 전문직 2,000여명, 언론인 400여명 등 나머지 비경작 의심자도 모두 처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부당 직불금 환수 등의 조치는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책 마련에 나선 건 다행이다.

지금까지 이장의 확인만으로 가능하던 것을 앞으로는 읍·면·동에서만 직불금 신청을 접수하고 외지인에게는 쌀 판매 및 비료 구매 실적과 이웃 경작자의 증명을 요구하는 등 경작 또는 임대차 여부 심사를 까다롭게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정액 이상 농업외 소득자와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 소유자 및 시장 개방 이후 참여자는 배제하고 부당 수령자에 대한 제재도 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래도 허점은 여전하다.

수 십만명의 소득과 이웃 농민의 확인 등을 일일이 검증하기도 힘들거니와 담당 공무원과 결탁하면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은 국민의식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랏돈은 먼저 먹는 게 임자’라는 생각들이니 제도를 아무리 뜯어고치고 새로 도입한들 소용없다.

지금 농어촌에서는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이 흘러넘쳐 ‘먹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한다.

비단 농어촌뿐 아니라 기업들도 IT다, 벤처다, 중소기업이다 하며 온갖 구실로 나랏돈 뜯어먹기에 혈안이고 정당이든, 시민단체든, 스포츠단체든 매한가지다.

국민의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나랏돈은 항상 ‘눈먼 돈’일 뿐이다. 정말 국민의식 개혁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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