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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식품안전, 대책은 없고 빈 말만 무성
[기고] 식품안전, 대책은 없고 빈 말만 무성
  • 승인 2008.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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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각 방송사 TV뉴스화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책임자들을 질타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성난 모습들이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의 매스컴들도 식약청이 늑장대응을 했다거나 안일한 대처로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고 몰아붙이며 이번 기회에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 일은 두 번 다시 거론되는 법이 없다.

무슨 일만 터지면 그저 한 때 우르르 몰려들어 되는대로 떠들다가 흐지부지하는 고질적 습관들이 아예 몸에 배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번 ‘멜라민 사건’에서 보이듯 만인이 보는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의 근본해결책을 마련하라며 질타하였고 식약청 관계자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을 하였지만 의원들은 그렇게 말한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고 공무원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소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일은 서로의 뇌리 속에서 그저 차츰 잊혀져갈 뿐이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그래왔기 때문에 TV뉴스를 보는 국민들도 저러다가 흐지부지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별반 기대하지도 않는 게 오늘의 슬픈 현실이다.

설령 누군가 작심하고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식품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백방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수백 수천 가지 사안 중에서 한두 가지의 문제를 다소 개선하는 성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위험 요인들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그 일만 한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쯤은 식품 현실을 어느 정도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는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은 오히려 문제의 근본 해결에 도움 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걸림돌 역할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제발 현실과 거리가 먼 무책임한 질책과 요구를 하지도 말고 또한 임시 모면을 위해 무성의한 답변으로 넘어가지도 말기를 바란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조금씩이라도 진전된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력의 결과가 모아져서 종내에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영원한 말장난’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의 중요 현안을 놓고 말장난이나 하라고 국회의원들을 뽑았을 리는 만무한 것이 아닌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이 맡은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열과 성을 다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철저히 하여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근본 해결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관련 법안을 마련해 시행하게 한다면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세비(歲費)나 축내서야 되겠는가?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은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소비자단체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핵심과 본질에 더욱 접근하여 들여다보면 ‘엄단’이라는 이름의 그런 조치가 문제의 근본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고 도리어 무고한 기업을 무너지게 만드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건의 내막을 잘 들여다보면 문제가 불거진 기업들 중에는 정말 나쁜 기업들도 더러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과는 달리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고의적으로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은 아니고 관련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적 상식과 관행에 따라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 어느 날 느닷없이 터진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악덕기업 명단에 오르고 마녀사냥이나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으면서 수십 년 쌓아온 훌륭한 기업이미지가 공든 탑 무너지듯 하루아침에 와르르 절단 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겪게 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일명 ‘우지(牛脂) 파동’으로 불린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 식품산업의 선도적 역할을 해온 삼양식품공업의 경우 그 당시 기업은 치명타를 입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대법원의 최종 무죄판결로 억울함이 밝혀진 것은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오래전의 ‘환만 식초 사건’도 비슷한 경우이고 몇 년 전의 ‘쓰레기 만두사건’으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던진 젊은 사업가의 죽음도 우리나라의 합리적 식품행정에 대해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고 하겠다.

악덕 식품위해 사범을 법에 따라 엄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건만 터지면 제2, 제3의 억울한 피해기업들이 속출하는 일만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윤세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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