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8:36 (금)
[발언대] 사슴과 물거울
[발언대] 사슴과 물거울
  • 승인 2008.09.10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루는 사슴이란 놈이 맑은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도취해 있었다. 우아하고 위엄한 뿔은 누가 보아도 무엇에 비길 바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아랫도리에 비친 낚시대같이 깡마르고 가느다란 두 다리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조물주를 원망하였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렇게 공평하지 못하담. 멋지고 우아한 뿔을 주었으면 거기에 어울리는 다리도 주어야지 이 껑청하고 깡마른 다리가 무어람’

그런데 이 때 사납게 생긴 사냥개가 덮쳐 왔던 것이다. 사슴은 혼비백산하여 숲속으로 내달았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깡마르고 보기 싫었던 두 다리는 사슴의 목숨을 구하려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다리가 재빨리 움직여도 거추장스런 뿔이 이 나무에 걸리고 저 나무가지에 걸려 맘대로 달아날 수가 없었다. 고맙고 자랑스럽던 그 뿔이 이제는 거추장스럽고 방해가 되었다.

이때 사슴은 자기의 생각이 잘못인 것을 깨닫고 그 후로는 그 보기 싫던 그리고 위급할 때 주인의 미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임을 완수한 두 다리를 소중히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후온 테누의 ‘우화시’ 중의 ‘사슴과 물거울’이란 만화 속에 나왔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책임을 다해 그 주인의 목숨을 건진 두 다리의 역할이다.

주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자랑은 커녕 빛나는 다른 부분의 우아함에 조화가 안된다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위급함이 왔을 때 책임을 다해 위기를 모면해주는 책임감을 우리는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시장에 나가보면 자기의 생을 스스로 책임을 지고 나가는 사람을 본다. 하체를 완전히 쓰지 못하는 사람이 바퀴 달린 수레 속에 실, 단추, 바늘, 고무장갑, 나프탈렌등을 싣고 물건을 파는 모습에서 생의 귀한 감동이 밀려온다.

이런 완전한 불구의 몸으로 자기의 생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가 책임지는 그 성스러움에 몸이 멀쩡한 사람들은 반성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육체는 불구일망정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그가 가려는 길을 곧바로 가고 있다. 참으로 성실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디디는 그의 발걸음은 비록 무릎으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한 올 한 올 책임있게 엮어 나가는 자랑스러운 걸음이다.

인간의 자각 중에서 사명을 자각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내 존재가 거듭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자기 자신이 인격자로서 존경받는 삶을 위해 각자 맡은 사명을 자각하는 책임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상돈 경남애니메이션고 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