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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소의 미스테리
[시론] 미소의 미스테리
  • 승인 2008.08.25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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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좀처럼 미소를 잃지 않으려 한다. 이웃들은 항상 미소로 인사하며 불쾌한 표정은 보이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소띤 얼굴로 타인을 배려하며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사는 것’을 생활의 모토로 삼고 있다.

미소에 내포된 배려, 인정, 위로, 칭찬, 동정 등 듣기만 해도 마음 푸근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이런 단어들은 일상에서 넘쳐나고 실제의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도처에 넘치는 상품과 함께 미소도 넘쳐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간소외’를 꼽는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것이 풍족한 이 사회, 수많은 기업이 인정을 광고의 소재로 삼고 최선을 다해 우리를 섬길 것을 공약하는 이 사회, 미소와 배려의 대화가 오가는 온화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왜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을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해답이 나올 듯도 하다.

의식주의 경우, 배고픔과 추위, 안전이라는 필요조건은 채워졌으나, 우리가 요구하는 충족조건은 끝이 없어 결코 채워지지 않으며, 끝없는 대체(代替)만 있을 뿐이다.

매스컴에서 기업들이 주장하는 인정과 봉사는 진정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소비재로서의 그것을 일컫는다.

소비자에게 덤을 주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로 하여금 인정과 서비스를 소비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가족과 친구,이웃에서 행해지는 미소와 배려도 기업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으며 사회는 이를 부추기고 있다.

이웃이나 친지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에서 우리는 칭찬하고 위로하고 배려한다.

대화의 소재도 칭찬, 부러움, 동조, 위로를 이끌어낼 수 있는것들로 이루어진다.

많은 이에게 있어 이러한 배려는 하루 세 끼니의 밥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배려해주지 않을 때 불안해 하며, 배려받기 위해 배려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배려해야 하고 위로해야 하는 지 진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가까운 이웃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며, 특히 이웃의 고민이나 불행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흔히 우리는 이웃의 불행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웃은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나 불행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신세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라 해도 좋다. 우리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오늘날 남발되는 미소와 배려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미소와 배려는 각자의 교양과 사회적 의무가 충분히 표출되어졌다고 생각되는 선에서 끝나며, 고통받는 이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 거짓된 미소나 배려에서는 아무 것도 구원 받을 수 없으며, 도리어 칭찬이나 위로, 동정 뒤에 숨어있는 질시와 무시와 차별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우리는 배려와 위로를 건네는 사회나 개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냉소와 공격성을 내부에서 키워나가며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켜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짓는 미소는 미소(微笑)인가, 미소(媚笑)인가?

정철규 진주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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