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0:16 (금)
[발언대] 우리의 엄친아?
[발언대] 우리의 엄친아?
  • 승인 2008.08.18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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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다.

대한의 건아 마린보이 박태환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모 언론중계에서 “우리의 엄친아 박태환”이라는 자막이 띄워지고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무슨 신조어나 유행어겠지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가끔 등장했던 용어라는 기억이 났다. 이참에 TV중계를 함께 보던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에게 엄친아가 뭐냐고 물었다.

1초의 주저도 없이 두딸은 경쟁이나 하듯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 친구의 아들의 준말이라는 것이다. 거기까지의 설명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자 재미있다는 듯 설명. 엄마 친구의 아들은 뭐든 못하는 게 없다는 뜻이란다.

예를 들면 “엄마 친구의 아들은 이번에 1등을 했다는데…”, “엄마친구의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는데…”, “엄마친구의 아들은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데…”, “엄마친구의 아들은 취직도 좋은 곳에 했다는데…”, 엄마친구의 아들은 용돈으로 무얼 사 주더라던데…”, 결국 엄마 친구의 아들은 거의 모든 재능을 다 갖추고 전지전능(?)하고 내 아이들 보다는 무조건 뛰어나다는 얘기다.

이러한 신조어가 코미디프로가 아닌 스포츠중계방송에서까지 부추기며 사용되는 것도 한숨지을 일이지만 우리나라 엄마들이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는 것을 꼬집고 사회적 분위기 또한 공감을 얻는 것 같아 씁쓰레한 웃음이나왔다.

사실 우리의 남편들에게도 아내들은 옆집누구 남편은 승진하고…, 내친구 남편은 뭣도 사주고… 하면서 비교해 은근히 심기를 자극하기도 하지 않은가.

나와 또래들의 성장 경험으로 보면 다수가 특정 비교대상에 의해 비교되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이었다. 남과 비교 된다는 건 선의의 측면에서 보면 약간의 자극과 선의의 경쟁심을 유발할 수 도 있겠지만 부정적 효과가 더 많을 것이다.

이젠 세상이 빠르게 급변하고 있어 멀미를 느낄 정도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엄친아 라는 신조어의 사회적 메시지는 어째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자녀들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개인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키워 주어야한다. 어쩌면 젊은층이나 소년소녀 세대들은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엄친아와의 비교보다는 용기와 격려 속에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양해영 진주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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