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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중의 지혜 활용하기
[시론] 대중의 지혜 활용하기
  • 승인 2008.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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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mob)들의 행동이 때로는 과격해져서 폭력성을 수반하거나 의사결정이 극단적이 되기도 하며, 합리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군중들의 이러한 경향성은 크게 보아서 ‘익명성’과 ‘책임감의 분산’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무리속에 섞여있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를 것이라고 여기는 익명성이 개인의 행동을 무책임하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수강생들의 숫자가 많은 교양 강좌는 소수의 전공자들이 모이는 전공강좌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출석률도 낮고 강의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담당 교수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를 것이다’라는 학생들의 기대심리가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평상시에는 아주 점잖은 사람일지라도 동일한 유니폼을 입거나 비슷한 속성을 지닌 무리 가운데 들어서게 되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으로 짐작한다.

군중행동이 과격해지거나 거친 폭력적 양상을 띠게 되는 데에는 “이 사태의 책임을 나 아닌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게 된다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때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군중들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처음에 가졌던 목적과는 달리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지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군중은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무리를 일컫는다. 일정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모인 집단(group)과 군중(mob)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중은 어리석다’라는 전제는 군중에게 주로 해당될 수 있는 것이지, 집단에게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청년 몇을 대상으로 해서 얻어진 키의 평균은 청년집단의 실제 키의 평균값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회에 속한 청년들의 키의 평균을 알아내기 위하여 측정 대상으로 하는 표본 수가 많아질수록, 그 표본에서 얻어진 평균값은 실제의 값에 근접해간다는 것이 통계학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안에 대하여 다수가 집단으로 모여서 서로 토론하면서 얻어낸 결론이 정답에 가깝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자신이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극이 될만한 흥미로울만한 하나의 사례가 있다.

어떤 교수가 보통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의 답을 나름대로 추측해보니 평균적인 능력 집단이 내놓은 답과는 많이 달랐다. 속으로는 “당신들이 그렇지 뭐”하면서 지나갔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 과제의 정답을 확인하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정말 놀랍게도 보통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게다가 전문가도 아닌 이 집단이 서로 의논해서 내놓은 답이 정답에 거의 근접해 있었던 반면에 자신의 추측은 상당히 빗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유능한 소수는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만큼 대중들의 능력을 불신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판단력은 과신하고, 상대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나 대중들의 선택은 과소평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 그리고 감성으로 잘 훈련된 대중 집단에서 얻어진 결론이나 선택은 유능한 지도자 홀로 내린 결정이나 소수의 엘리트 참모들의 선택보다 훨씬 현명하고 탁월한 것일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내 마음속의 자신감이 지나치면 오만함이 넘치게 되고, 이 오만함이 올바른 선택을 내치고 어리석은 길로 가게 하는 독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지혜로움을 가로막는 오만함을 끊임없이 다스려 나가면서, 오히려 ‘통계학의 평균원리’와 ‘심리학의 집단원리’를 충실하게 따라가 볼 일이다.

대중들의 마음을 얻어서 세상을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어가는 지름길이 이런 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유갑 경남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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