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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왜색 땅이름, 언제까지 그대로 둘건가
[시론] 왜색 땅이름, 언제까지 그대로 둘건가
  • 승인 2008.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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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15일이면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광복 63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지만 정작 우리의 생활과 문화, 언어 속에 깃들어 있는 왜색 잔재들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산 이름에 남아 있는 왜색 땅 이름의 경우 비단 등산 애호가들 뿐 만아니라 국립지리원 등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자성과 청산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1861년에 제작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체들이 약 2,850개 묘사되어 있으며 또한 1999년에 북한의 과학원 지리연구소에서 편찬한 ‘조선의 산줄기’에도 75개의 주요 산줄기와, 3,601개의 주요산, 759개의 주요 고개가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 수많은 산들이 자리하여 여러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산줄기 이름, 산 이름과 같은 땅이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문화·지리·언어·풍속·성씨 등에 관한 전통적 의미와 내용 등이 담겨져 있는 화석과도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이러한 땅이름 문화유산은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하는 19세기 말엽부터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개명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광산개발과 관련한 이권 때문에 한국의 지질구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전문적인 지질탐사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이 무렵부터 이미 우리 땅이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영향을 미쳐 우리의 산 이름 등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특히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우리 민족의 유달리 강한 귀소 본능을 잠재우고 고향의식·국가의식을 말살하여 철저히 황국신민화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문화·지리·언어·풍속·성씨 등의 고유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땅이름 문화유산에 대하여 대대적인 창지개명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14년의 부제(府制) 실시에 따른 전국적 땅이름의 일대 개편 작업 및 1914년~1918년까지 5년에 걸쳐 전국의 땅이름과 지리를 조사하면서 제작한 ‘근세한국 오만분지일지형도’의 발간작업이다. 그리고 그 이후 시기에도 광복 이전까지 드러내지 않고 의도적으로 추가 개편한 땅이름들도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모든 산의 조종으로서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의 주봉 이름 장군봉, 일명 대장봉을 대정 천황의 이름을 따서 ‘대정봉’으로 고쳐 부른 것이고, 일본의 자존심을 누른 임진왜란 때의 승군장 사명대사 등의 충혼을 모신 표충사의 주산 이름을 ‘천황산’으로 개명하는 등 많은 산봉 이름들을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천황산’ 또는 ‘천황봉’으로 바꾸어 불렀다. 조선왕조 수도 한양의 작은 명산 ‘인왕산’을 ‘仁旺山’으로 개명한 것처럼 ‘王’자가 든 많은 산 이름들을 일왕을 상징하는 ‘旺’자가 든 산 이름으로 고치기도 했다.

함양군 병곡면과 서하면 경계 지역에 위치한 괘관산의 최고봉인 천황봉 역시 왜색 땅이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현재 함양군에서 산 정상에 세워놓은 표석에도 ‘天皇峯’이라 새겨 놓았는데, 바로 잡아야 할 산봉 이름이다.

“은둔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괘관산의 이름을 대봉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현 천사령 함양군수의 지론에 공감하는 대다수 군민들은 어렵사리 산 이름을 바꿀 경우 차제에 천황봉이라는 이름까지도 본래의 제 이름인 ‘천왕봉’으로 바꾸거나 산 이름에 걸맞는 새로운 봉우리 이름으로 개칭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화왕산·중왕산·가리왕산 등의 ‘王’자가 든 주요 산을 ‘旺’자로 고친 왜색 산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쓰고 있다는 것은 광복 63주년을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볼 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 이 글은 우리나라 고대(古代) 지명(地名) 연구의 권위자인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金侖禹 전문위원이 ‘산 이름에 남은 왜색 땅 이름’이라는 논문에서 발췌 정리한 내용이다.

김윤세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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