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발언대]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 승인 2008.07.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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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조선시대 세종 임금 때의 일이다. 경상도 동래에 관노(나라에 심부름을 하는 노예) 장영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관노는 자유가 없어서 관가에서 시키는 대로 일만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장영실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언제나 깊은 생각으로 이치에 맞게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도르래를 만들어 물 긷는 일을 편리하게 해 주기도 하고, 창고 속에 버려진 무기를 손질하여 새것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 논과 밭이 말라가고 있었다. 현감은 기우제도 지내고 또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비가 내리기를 빌었다. 그러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장영실은 가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현 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약 십리쯤 떨어진 곳에 큰 강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고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장영실은 어떤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현감에게 말했다. “물은 십리 아니라 백리 밖에서도 길만 제대로 열어주면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쉽게 흐릅니다. 다행히 그곳은 이곳보다 지형이 높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내젓던 현감도 이치에 맞는 장영실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현감의 허락을 받은 장영실은 곧 공사를 시작했다.

이리저리 지형을 조사하여 물이 잘 흘러내릴 곳을 골라 넓게 도랑을 파게 했다. 물은 아주 쉽게 동네 벌판까지 흘러들게 되었다. 동네에는 그때부터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 되었다. 장영실(주요 발명품 ; 혼천의, 관천대, 오목해시계, 자격루, 간의, 규표, 측우기, 일구대, 일성정시의, 갑인자)에 대한 소문은 왕실까지 알려지게 되어 장영실은 임금의 부름을 받아 여러 가지 과학기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관노의 신분으로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벼슬도 하게 되었다. 사람의 뛰어난 재능은 장영실의 경우와 같이 신분 제도를 뛰어 넘어 벼슬을 하기도 하고 또 나라를 위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기도 한다.

성숙한 지혜는 물질적 재산보다 소중하여 백과사전만큼의 지식보다 강하며 그 생애가 다할 때까지 영원한 무기이다. 바른 마음가짐과 정신을 깨끗이 쓰면서 하는 일에 정신을 완전하게 집중시킬 수 있다면 불가능이란 없음을 보여준 이야기이다.

세상의 일이란 본래 정해진 바가 없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그 고난을 현명하게 잘 헤쳐 나아가서 오히려 한 차원 더 높이 올라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고난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고난에 끌려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해야 할 중대한 일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부정적인 마음, 탐욕의 마음, 어리석은 마음 같은 것을 될 수 있는 한 제거해 가면서 마음속에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며 진실한 마음을 계발하고 지혜롭게 살아야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명한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김상돈 경남애니메이션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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