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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오월동주’
난파된 ‘오월동주’
  • 박유제 기자
  • 승인 2008.06.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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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합려(闔閭)와 월나라(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관계에 있었다.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였다.

그리고 구천은 회계산에서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항복당하는 등 서로 물고 물리고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같은 배를 탔으나 풍랑을 만났다. 그러나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단합해야 했다’

오나라 합려왕 때의 손무(孫武)가 지은 <손자(孫子)>의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에 관한 얘기로,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나 서로 협력해야 하는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선진당과 진보성향의 창조한국당이 합의한 공동 교섭단체 구성이 협상결렬 위기에 처했다.

두 정당 모두 교섭단체 구성요건인 원내 20석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지난달 23일 ‘전략적 동맹’을 맺었지만, 지금까지 교섭단체 대표를 서로 맡아야 한다는 입장차만 거듭 확인하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 개원이 임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두 정당이 접점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조만간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정당의 ‘동맹’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정치지향점이 다른 상태에서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자체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오월동주’라는 것이다.

보수정당과 진보성향 정당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여부는 다른 복안이 있는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두 정당의 ‘난감한’ 정치동맹은 일단 실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실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에서도 ‘오월동주’는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6공화국시절의 이른바 ‘3당 합당’이다. 여소야대였던 당시 국회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가 연합해 민주자유당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3당 합당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정치권의 ‘오월동주’는 계속됐고 확산됐다. 때로는 ‘이합집산’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됐고, 때로는 ‘정계개편’이라는 말로 평가절상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종연횡’이라는 수식어가 나붙기도 했다.

보수집권당인 한나라당의 한 전임 사무총장은 과거 진보정당이었던 민중당의 주요당직을 맡았었고, 현재 소속된 의원 중 상당수가 민주화시절 ‘민주투사’였다.

이들은 흔히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내부적인 권력암투의 한 가운데 있었고, 이긴 자는 보수정당의 권력실세가 되었고 패배한 자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경우와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오월동주’는 없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라는 거대담론 속에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던 민주노동당내 자주파(NL)와 평등파(PD)가 결국 총선직전 갈라서야 했다.

그리고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과 진보성향의 창조한국당이 ‘교섭단체 구성’을 명분으로 ‘오월동주’ 하다가 난파 직전에 직면하면서 정치권의 오랜 ‘오월동주’는 해묵은 현재진행형이 됐다.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실패한 연정’이 오직 권력을 탐닉하기 위한 기형적 연맹의 결과라는데 동의한다면, 정당정치와 온전한 민주정치를 위해 정치권이 무엇부터 반성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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