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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살아있는 문화와 박제된 문화
[시론] 살아있는 문화와 박제된 문화
  • 승인 2008.06.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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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불탄 지 넉 달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의 종말에, 국민들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현장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악성 댓글에 시달린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숯덩이 앞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명복’을 빈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국민들의 관심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등 다른 데로 옮아가, 언론에서도 숭례문 복원에 관한 후속기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화재 후 가장 큰 걱정은, 과연 완벽한 복원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었다. 여론에 쫓긴 문화재청이 일을 너무 서둘러 졸속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지, 뒷일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큰 기사는 아니라도 ‘목재는 전량 단단한 국산 소나무를 쓰기로 하고 강원도 등지에서 좋은 금강송을 찾고 있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문화재청의 계획은, 본격적인 공사는 2010∼2012년 3년간 진행하고, 일제시대까지 남아 있었던 숭례문 옆의 성벽(좌 10m 우 70m)도 함께 복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행히 소실 전에 작성해 두었던 실측도면(實測圖面)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고 한다.

하지만 숭례문이 수십m의 성벽까지 달린 웅장한 모습으로 다시 솟고 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화재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5년(1396년) 도성(都城) 축성시에 건립하고 세종 30년(1448년)과 성종 10년(1479년), 지난 60년대와 90년대 등 여러 번 중수했지만 완전히 새로 지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건축물’ ‘국보 제1호’ 등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복원이라 부른다 해도, 새로 짓는 숭례문은 예전의 그 숭례문이 아니다. 기껏해야 숭례문의 ‘재현(再現)’이거나 복제품에 불과한 것이다.

차제에 ‘숭례문 복원’ 대신 ‘새로운 숭례문’을 짓는 것은 어떨까. 사실 숭례문은 1907년 일제의 도성 철거를 시작하면서 문(門)이라는 ‘소통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그 이후 백 년을 길 가운데 섬처럼 갇힌 ‘폐쇄 공간’으로 서 있었다.

굳이 그 자리로 되돌려놓는데 매달리기보다, 몇 백 년 후 국보가 될 수 있는 21세기의 대표 건축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를 건립해 물려주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굳이 숭례문만이 아니다. 고려청자나 일본인이 환호하는 정호다완(井戶茶碗)을 완벽히 재현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조들의 작품을 본받으려 애쓰는 것을 흉잡을 일은 아니지만, 과거만을 붙들고 있어서도 안 된다.

먼 훗날 “토기시대를 선도한 가야토기, 고려의 청자, 조선에 분청과 백자가 있었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과거를 복제하는데 열중한 시대였다”라고 평가 받아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문화는 생물(生物)이라고들 한다. 멈춰진 시간 속에 박제된 문화나 유물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지금 여기, 이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 진정한 문화예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고희 김해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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