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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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우 문튼튼마디한의원 원장 요리전문학교에 다니는 한주연(20) 양, 아직 학생이지만 경험을 쌓기 위해 학교에서 실습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며 요리 기구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게다가 몇 달 뒤 열리는 국제요리대회 참가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모여 방학부터 맹연습 중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팔꿈치 아래쪽 부분에 통증이 나타났다.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하며 파스만 붙이고 평소처럼 요리 연습을 하던 주연 양은 참다 못한 통증에 찾아간 병원에서 `골프엘보`를 진단받았다.  팔꿈치에서 안쪽과 바깥쪽을 만져보면 동그랗게 튀어나온 뼈가 있는데 이 부분을 `상완골상과`라고 부른다.  `엘보`는 이 뼈에 붙어있는 손목과 손가락의 활동을 돕는 힘줄들이 감당하기 힘든 힘으로 인해 미세하게 파열돼 통증을 동반한 염증이 발생된 질환이다. 처음에는 팔꿈치 아랫부분의 팔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해당 부분이 욱신거리거나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고 건강할 때보다 팔꿈치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면 `엘보`를 의심할 수 있다.  `엘보`는 특정 스포츠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속적인 자극에 의해 팔꿈치 안과 밖의 힘줄 손상이 발생한 질환이다. 손목과 손가락을 구부리는 힘줄이 손상돼 팔꿈치 안쪽에서 통증이 나타나면 `골프엘보`, 반면에 손목을 위로 올리고 손가락을 펼 때 관여하는 힘줄이 손상돼 팔꿈치 바깥쪽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을 `테니스엘보`로 구별한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테니스 라켓으로 받아 칠 때 받은 충격과 골프 스윙 시 잘못된 자세나 미스샷으로 뒤땅을 칠 때 골프채에 부딪힌 충격이 팔로 전해져 힘줄이 손상된다는 사실에 입각해 `테니스엘보` `골프엘보`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실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살펴보면 스포츠가 원인인 사람들보다 가정 주부나 요리사처럼 팔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실 어떤 질환이든 한번 부상을 입으면 해당 부위를 사용하지 않고 당분간 쉬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일상 생활 중에서 손과 손목 활동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엘보`는 한 번 발병되면 재발이 되기가 쉽다.  엘보가 심해지면 염증이 팔 전체로 퍼져 나중에는 씻거나 옷을 갈아입는 등의 일상 생활도 힘들어질 정도로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발병했을 때 전문 의료기관을 찾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오래 지속되는 팔꿈치 통증은 대부분이 팔꿈치에 가해진 과도한 힘으로 손상된 힘줄이 원인이지만 만약 반복적으로 재발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팔꿈치 인대 손상을 재발시키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목디스크로 인해 팔의 신경이 자극 받은 경우인데 이 경우 손상된 팔꿈치 부위 외에도 목디스크에 대한 치료가 병행돼야 잦은 재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대의 염증이 심하다면 우선 봉약침으로 해당 부위의 염증을 완화할 수 있고 이와 함께 인대의 주 구성 성분인 콜라겐을 첨가한 연골한약으로 힘줄 손상을 보강하는 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기고 | 심우문 | 2012-04-02 18:54

성 득 용창녕군 문화해설사  창녕군은 북서쪽에서 서쪽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는 약 60km 길이의 낙동강이 군의 왼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강은 우리 삶의 중요한 터전이었다. 강의 주변에는 고대로 부터 현재까지 많은 문화 유적지와 문화재가 있고, 그곳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방면 송곡리를 시작으로 창녕의 품안에 들어온 낙동강이 적포를 거쳐 남지읍 용산리에 이르면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있는데, 옛 부터 이곳을 `가야진` 또는 `기음강`이라 불렀다. 가야진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 지명의 역사가 천년이 훨씬 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해 후세에 널리 이름을 떨치고 전설이 된 `홍의장군 곽재우`의 첫 전승지이다.  `기음강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는 선조 25년(1592년) 5월 4일에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터진지 21일 후의 싸움이었고 조선군의 첫 승리였다. 곽재우 장군은 강물 속에다 말뚝을 박고 물 위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에 나무를 걸어 그 위로 사람들을 다니게 했다. 적이 볼 때 강수심이 얕아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위장을 한 것 이다. 강 건너에서 이것을 본 왜군은 수심이 깊지 않은 강이라 생각하고 한밤 중에 강을 건너다 많은 왜군이 거센 강물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사`에 보면 강물 속에 박아둔 말뚝은 이곳만이 아니라 `박진나루` `적포나루` 등 주요 나루마다 배가 다니지 못하게 나무 말뚝을 박고 강변에 군사를 매복해 지키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곽재우의 이러한 작전은 주로 낙동강을 이용해 군수물자를 전방으로 수송하던 왜군에게 보급로차단이라는 큰 타격을 줬고, 관군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던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포획한 적선이 40여척이었다고 `징비록`에 기록돼 있다.  또 곽재우 장군은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기음강 뒷산 창진산과 강 건너 용화산 마루를 잇는 줄을 걸고 병사들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들을 걸어서 줄을 잡아당겨 춤추게 해 왜병들이 이것을 보고 많은 군사가 강물 위를 오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적을 교란했다고 전해 온다.  이후 남지 지역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의병군에 의한 유격전투가 벌어졌다. 곽재우 장군은 강의 하류로 나아가 강변 북쪽인 도천면 우강리 산에 우강산성을 쌓았고, 거기서 웃개 나루를 거쳐 북쪽 유어면 마수원까지 의병군을 매복시켜 왜병의 출몰 시에는 횃불과 연기로 봉수 연락을 하며 싸워 나갔던 것이다.  개전 초부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군에게 곽재우의 기음강 전투 승전보는 관군의 사기 진작과 동시에 곽재우 장군에게는 자신감을 준 기념비적인 전투라 할 수 있겠다. 그 기음강과 웃개 나루 사이의 강변에 창녕군은 전국 최대 규모(40만㎡)의 유채 밭을 조성해 해마다 4월에 `낙동강유채축제를 열고 있다. 아름다운 유채 밭을 거닐며 그 옛날 구국의 일념으로 몸을 던져 전설이 된 홍의장군 곽재우의 정신을 새겨보자.

기고 | 성득용 | 2012-04-02 18:53

곽 숙 철CnE 혁신연구소장 스웨덴의 경제학자 두 명이 고텐부르크의 지역혈액센터를 방문해서 혈액기증에 관심이 있는 여성 153명을 모았다. 그리고 동기 연구자들 사이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방법에 따라 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실험자들은 첫 번째 그룹에게 혈액기증은 자발적이기 때문에 혈액을 기증하더라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혈액을 제공하면 각자 50스웨덴 크로노르(약 7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에서 다시 변형된 제안을 받았다. 그들은 50스웨덴 크로노르를 받게 되며, 받은 돈을 소아암 자선기금에 기증할지의 여부를 즉각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그룹의 여성 중 52%가 혈액을 기증했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도 동족인 스웨덴인을 위해 기꺼이 선행을 베풀려는 착한 시민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어떠했을까? 통상적인 동기 이론에 따르면 이 그룹에게 기증할 동기가 어느 정도 많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그들이 혈액센터를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내재 동기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돈까지 받으면 동기가 한층 불타오를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이 그룹 중에서 30%만이 혈액기증 의사를 밝혔다.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후에 혈액기증자의 수가 늘어나기는커녕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한편 돈을 받되 바로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세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53%가 기증을 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며, 보상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인정의 형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상에는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요소가 많다. 따라서 보상을 할 때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많이 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흔히 돈을 많이 주면 직원들이 더 행복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고소득자 대열에 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막상 그만큼 돈을 벌면 처음에 기대했던 성취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조사에 의하면 평균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초기에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만족도는 떨어지고 긴장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둘째, 공정하지 못한 보상은 조직 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경우에 따라 보상 내용을 비밀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기준만큼은 명확히 공개하여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없애야 한다. 보상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목적이 무엇이며,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얼마나 보상하는지에 대해 직원들은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절차의 정의와 분배의 정의`를 갖춘 보상 시스템을 바란다. 이것이 갖춰지지 않으면 편애와 기회주의, 차별이 난무하기 십상이다. 셋째, 보상을 하다 보면 때로 처음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한 예로 사소한 행동에도 보상할 경우 직원들은 `당신은 평소 이 일을 꺼리는 편이지만, 회사를 위해 해준다면 우리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다` 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보상의 목적은 직원들의 의욕을 높이는 데 있지만 이런 식의 보상은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판매 수수료나 성과급과 같은 실적 위주의 보상도 일상화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직원들이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고 오로지 돈이 되는 일만 골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인센티브와 같은 외적 보상도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 그 자체에서 오는 내적 보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할 때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으며, 그 일을 할 만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실제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 열정적으로 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적 보상이다. 이러한 내적 보상의 중요성은 21세기에 들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순종만을 요구하던 시대에는 외적 보상만으로도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러한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돈으로 직원들의 노력을 좀 더 끌어낼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열정과 창의성은 결코 꺼낼 수 없다는 말이다.

김루어의 아침을 여는 시선 | 곽숙철 | 2012-04-01 20:05